brunch

차전자 등불을 밝히면

24년 9월 10일 화요일

by 보리남순

개똥만큼 흔하던 질경이 보기가 토라진 친구 얼굴 보기보다 힘들다. 질경이 사진을 찍자고 온 동네를 돌아다녔어도 사진을 얻지 못하고 돌아왔다. 집 마당에서 지천으로 자라던 질경이는 엊그제 풀 깎을 때 베어버렸고, 마을 근처 질경이는 제초제로 사라졌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에는 저기 몽구네 밭 주변으로 많았는데, 지금은 제초제 뿌려서 다 없어졌지 뭐야"라며 옛 기억을 더듬어 알려주었지만 실체가 사라진 이야기일 뿐이다. 사진을 구하지 못하였으니 어쩔 수 없다. 성의를 다하지 못했다는 오해는 감수해야 한다. 사진첩에 들어 있는 흙 묻어 볼품없는 사진을 찾았다.


질경이는 약성이 좋은 야생초로 알려져 있다. 효능을 읽어보면 불로초가 따로 없다. 질경이만 그러한가? 저절로 자라는 산야초들의 약성은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는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저마다 좋은 약성이 있다.

나는 종종 가족들에게 야생초로 반찬을 만들어 주곤 한다.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어느 6월이었다. 집 주변에서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질경이를 캤다. 땅에서 자란 야채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손 수고가 많이 든다. 캐고 다듬고 삶고 또 찬물에 우려 서 밥상에 오르기까지 꼬박 한나절이 걸리기도 한다. 질경이가 그랬다. 여러 번 손질한 질경이를 들기름과 갖은양념을 넣고 프라이팬에 볶아 저녁상에 올렸다.

여느 때처럼 밥상에 오른 나물을 아이들에게 맛보고 이름을 맞혀 보라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다. 나물보다는 고기반찬을 더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키워서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고픈 어미의 얄팍한 희망이다.

작은 아이는 또 시작이냐는 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젓가락으로 나물 한 가닥을 입에 넣고 몇 번 씹지도 않고 대답을 했다. "질경이요." 대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어떻게 알았냐고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물었더니 "질겨서요."란다. 더 먹으라는 말은 못 했다.

작은 아이 말처럼 질경이는 질기다. 섬유질이 많아 질겨서 질경이라고도 하고, 발로 밟히고 또 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해서 질경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질경이는 잎, 뿌리, 씨앗 중 어느 하나도 버릴 게 없다. 민가 주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잘 자라는 탓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배 곪지 않게 해 준 고마운 나물이이었다. 질경이 씨앗을 차전자(車前子)라고 하는데, 차전자는 남성들의 전립선 치료제로, 또 눈을 밝게 하고 기침을 멈추게 하던 가정상비약이기도 했다. 밤이면 어머니들은 차전자 기름으로 등불을 밝혔다. 차전자 기름으로 등불을 밝히면 집 떠난 가족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시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차전자 이야기가 있다. 지방에서 혼자 살고 있는 시어머니는 한 해에 두어 번 서울에 올라오셨다. 서울에는 시누이들이 살고 있다. 시누이들과 지낸 뒤 마지막으로 들르는 집이 막내아들네였다. 며칠 머무르며 일을 거들어 주기도 했다. 콩을 심을 때였으니까 5월경이었을 것이다. 콩을 심다가 쉬고 있을 때 지천으로 자라는 질경이를 보시고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이길 우리는 빼뿌쟁이라 카거든. 옛날에는 결혼을 일찍 했다 아이가. 우리 사촌오빠만 해도 열두 살에 장가를 갔더니라. 근데 그때는 날수 많은 병에 많이들 걸렸거든."

"날수 많은 병이요? 그게 뭔데요?"

"염병, 염병이 나으려면 석 달이 걸리거든. 그래서 날수 많은 병이라 안 캤드나. 아무튼 일찍 결혼을 했는데 신랑이 날수 많은 병에 걸린기야. 그럼 부모들이 각방을 쓰게 안 하나. 부부가 합방을 하면 바로 죽는단다. 그래 부모들이 각시가 신랑 눈에 안 띄게 각방을 쓰게 하거든. 일찍 결혼했다고 해도 신랑 각신데 보고 잡지, 그러다 신랑이 죽으면 얼마나 보고 잡겠나. 그럼 각시가 깜깜한 밤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누가 보면 안 되거든, 찬물에 목욕을 하고, 치성을 드릴 때는 따신 물에 목욕하는 게 아니라데, 찬물에 목욕해야 한다데! 찬물에 목욕을 하고 동쪽을 보고 이 빼뿌쟁이 기름에 불을 붙이면 보고 싶은 귀신이 찾아온다 안 하나."

"진짜요? 어머니도 한번 해보세요. 제가 질경이씨 훑어 드릴게, 그럼 아버님이 찾아오실까요?"

"그야 모르제. 난 보고 잡은데 그쪽에서 안 보고 싶어서 안 올지도. 그래도 아, 보게는 안 생겼나, 옆에 자리를 잡아 놨으니."

"아버님 만나시면 일단 한 대 때리고 시작하세요, 어머니 속 많이 썩였으니까. 왜 때리냐고 하면 아버님 가시고 난 뒤 시대가 많이 변해서 요즘은 남자가 말 안 들으면 여자가 때리기도 한다고 하세요." 아버님은 40대에 돌아가셨고 일찍 딴살림도 차렸다. 하지만 어머님에게서 아버님을 원망하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잘못은 모두 시앗 탓이었다. 어머니의 아픔에 공감하자고 했던 철없는 막내며느리의 말에 어머니는 묻힌 기억 하나가 떠올랐던가 보다.


"내가 혁선이 났고 나서였던가? 한번 그런 적이 있다. 내가 오십 넘으면 당신 가만 안 놔둔다고. 그래, 니 아버님이 오십 넘어 그럴 것 뭐 있냐고 지금 한번 해보라고 하데. 그래 지금은 안 한다고 했는데, 오십도 안 돼서 가버렸지 않았나. 다시 만나도 어디 그럴 수가 있나? 시어머니가 옆에 기실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시어머니 무서 봐서 어디 말이나 한마디 했나? 다 그런 줄 알고 살았제."

'아... 시어머니...!' 나의 시어머니와 그녀의 시어머니는 50년 넘게 한 지붕에서 세끼 밥상을 나누셨다. 시할머니는 열일곱 꽃 같던 며늘아기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사셨다. 시할머니는 92살에 돌아가셨다. 저승에서도 이승의 가계도가 이어질까? 나는 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속마음으로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새 술은 새 부대’라지 않던가!


아버님 얘기만으로도 어머니는 좋은가 보다. 누에고치 풀리듯 이야기가 술술 이어졌다.

시아버지는 4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두 분이 함께 사신 기간은 20년 남짓 되었다. 그 사이 두 분 슬하에 팔 남매를 두셨으니, 금슬 좋은 부부였다. 환갑 즈음, 시어머니가 많이 쓸쓸해 보였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시어머니와 세 며느리가 차례 음식을 준비하던 중, 며느리가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와?"

"아무래도 저희들이 환갑 선물을 잘못한 것 같습니더. 자~알 생긴 영감님을 선물해 드렸어야 캤는데 우쩌자고 우리가 반지 선물을 했답니꺼? 지들이 잘못한 거지예, 어무이?"

사투리를 써가며 장난을 치자 옆에 있던 두 며느리는 큭큭 웃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숨도 쉬지 않고 이렇게 대거리를 하셨다.

"내 이만큼 살아봐도 그 사람만 한 사람이 없더라. 그 사람 같기만 했다카먼 진즉 갔을끼다."


어머니 기억 속에 남은 아버님은 키도 크고 풍채도 좋고 잘 생겼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너무 일찍 떠나신 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운 마음일 것이다.

어머니는 평생 마음에 차전자 등불을 켜고 사셨던 것 같다.




keyword
이전 06화눈치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