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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손질이 여러 번이야

by 보리남순

우리 동네에는 전설처럼 떠도는 소문이 하나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눈물을 흘리며 우는 세 남자가 있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서 아무개, 황 아무개와 또 다른 황 아무개가 인데, 그들이 우는 이유가 웃프다. 일을 못해 억울해서, 비 내리는 하늘을 원망하며 흘리는 눈물이라니 말이다.


우리가 구입한 밭은 원래 배과수원이었다. 과수원이라고 하면 몇 천평은 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절대로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참고로 우리는 농사를 글로 배운 사람들이다.

농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겁 없이 달려들었던 우리 부부와 달리, 이전 배밭 주인 부부는 농사로 잔뼈가 굵은 동네에서 소문난 농사꾼들이었다. 비 오는 날 일을 못해서 울던 세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이 배밭의 전주인이었다. 일중독자 남편과 억척스러운 부인이 키운 배는 동네에서 꽤 유명했던가 보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첫 해부터 '아이 머리통 만하게 컸던 배' 소리만 수차례를 들었다. 들에 나왔다가 일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들어온 동네사람들 마다 이구동성 같은 말을 얼마나 여러 번 했던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애기 머리통만 한 배'라고 외치고선 다시 잠들 지경이었다. 배밭의 새 주인 들은 절대로 전주인 부부의 발톱 밑 때만큼도 미치지 못할 거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서야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 사람들은 땅 한 뼘 놀리지 않았어요. 저기 배 밭 주변으로 빙 둘러 들깨를 심어서 가을이면 들깨를 몇 가마씩 털었는지 몰라요.” 애써 손가락을 뻗고 들깨 심었던 자리를 짚어가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보지 않았어도 그들 부부라면 그랬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동네분이 말해 주기 전에 벌써 부부에게서 배 밭 주변으로 들깨를 심어 보라는 권유를 몇 차례나 들었던 터였다.


그들 부부만큼은 아니지만 해마다 들깨 씨를 부어 모종을 내서 심고 있다. 들깨나 참깨는 농사짓기가 까다로운 작물은 아니다. 모종을 심어 놓으면 농약을 치지 않아도 잘 자라는 작물이다. 고추 같은 작물에 비하면 거저먹는다 싶을 만큼 덧손질은 많지 않지만 대신에 뒷손질을 여러 번 해야 먹을 수 있다.


깻대를 베는 시기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에 따라서 초짜와 경력자의 실력이 드러난다. 옆에서 볼 때는 쉬어 보이는 일도 막상 해보면 보통 아닌 일들이 있다. 콩. 깨 농사가 그랬다. 여러 번의 뒷손질과 품이 들었다.


어느 해였던가, 시간이 맞았던 작은 아이의 손을 빌려 콩을 털고 까불어 콩깍지를 골라내고 있을 때, 작은 아이가 뜬금없이 "콩 한 되에 얼마예요?"라고 물었다. 농사에 관심이 생겨 묻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 왜?" 하고 얼른 되물었더니,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싱겁게 대답했다.

"이런 서리태는 만 오천에 거래되는 거 같더라." 성당분들이 콩을 사고파는 것을 본 기억으로 대답했더니, 작은 아이 입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 가격이면 어머니도 사 드시는 게 낫지 않아요?"


요즘 마트에 나가면 참기를 값이나 들기름 값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참깨보다 한참 대접이 떨어졌던 들깨가 어느 순간 참깨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게 되었다. 음식 좀 한다는 식당에 가보면 들기름을 듬뿍 치고 무친 국수가 메뉴판에 오를 만큼 요즘 들기름 인기가 높아졌다. 사실 알고 보면 농사짓는 수고나 영양적으로 차이가 없는 두 작물이고 보면 가격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온당하다.


아직 영글지 않은 여린 들깨송이를 골라 따왔다. 묽은 반죽을 입혀 튀긴 깨보숭이를 아이들도 좋아했을 텐데, 아이들 어릴 때는 한 번도 해 주지 못했다. 아이 키울 때는 왜 그렇게 바빴던지. 그때는 손은 더디고 마음만 급했다. 덜 중요한 것들에 마음과 시간을 쏟고 살았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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