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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24년 9월 24일 화요일

by 보리남순

내 밭에서 자라는 밤나무는 몇 살이 되었을까?

나무 시장에서 온 나무의 나이를 헤아리는 일은 애초 불가능하다. 그래도 내 집에 온 횟수는 좀 기억하련만 시간이 갈수록 들고 나는 것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그러나 간혹 더욱 뚜렷해지는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시골로 이사 온 첫 해 작은 아이와 함께 밤을 주으러 갔다가 마을 노인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라든지, 산을 누비고 다니며 밤을 줍던 친구와의 추억 같은 것들이다.


시골로 이사 온 지 5년쯤 지나 그 친구를 만났던 것 같다. 친구는 행색이나 하는 짓이 야생의 초원을 터전 삼아 살아가던 인디언 부족민 같은 사람이었다. 산과 들을 쏘다니며 아이처럼 노는 것에는 나도 꽤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었지만 맨발로 계곡을 타고 산을 오르는 친구에 비하면 나는 한갓 순박한 도시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시골 태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는 서울 한복판인 종로 인근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가 이곳에 온 것은 결혼과 함께였다. 이곳 태생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도시의 추억은 묻고 그는 시골여자가 되었다.


처음 친구를 만났을 때 그의 맑은 눈에서는 잔잔한 호수에 담긴 물이 일렁이듯 맑은 눈물이 가득한 채로 나에게 말했다.

"나... 외로웠어. 여기는 친구가 없어."

느닷없는 그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우리 또래의 젊은 사람이 많지 않던 섬 마을에서 우리는 그렇게 정서적 공감대와 외로움을 나누는 단짝이 되었다.


친구와 나는 봄이면 봄꽃을 찾아 산을 누비고 다녔고 여름에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 산을 찾았다. 까칠한 밤송이가 입을 벌리는 가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몇 번이고 산에서 만났다. '밤 주으러 가자'는 문자는 핑계였을 뿐 목적은 밤이 아니었다. 젊지도 늙지도 않았던 친구와 나는 손으로 만져지지 않는 어떤 상실의 통증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고 견디어야 냈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 같은 시절이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서러워 말지어다/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세월을 찾으소서

초원의 빛이여/ 그 빛 빛날 때 그대 영광 빛을 얻으소서

한때는 그토록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는 덧없이 사라져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도/ 결코 서러워 말자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이제 빛바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친구와 함께 다녔던 산에 오르지 않는다. 간혹 햇살 좋은 이른 봄, 산에서 보았던 노루귀와 앵초, 투구꽃이 그리울 때면 멀리서 까치발을 하고 산을 올려다본다. 이제는 그것으로도 족하다.


유월이 되면 산에서 맡던 지릿한 밤꽃 향내를 내 밭에서 맡는다. 무릎에도 닿지 않던 나무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어 자랐다. 삼 년 전부터는 밤송이도 맺었다. 떨어진 밤알을 손안에 넣고 시를 읊조린다.


다시는 찾을 길 없더라도/ 결코 서러워 말자

우리는 여기 남아 굳세게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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