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운 바위풀 Jul 01. 2022

여덟 번째 해외 이사

전업 아빠 육아 일기 #15.

또 부스럭 부스럭 짐을 싸고 있습니다.


꼽아 보니 이번이 여덟 번째 해외 이사네요. 십여 년 동안 많이도 돌아다녔다 싶습니다. 그중 큰 아이가 기억하는 것은 반 정도 되려나요. 이제 당분간은 서울에 있어야겠지요.


예전에 끄적거리다 멈춘 브런치 서랍을 뒤적이다가, 사 년 전에 써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큰 아이가 유치원 생활을 끝낼 즈음이었나 봐요. 반팔 교복이 작아져서 불편하다는 아이에게 말해 줬습니다.


"이제 그 옷은 조금만 더 입으면 되니까 괜찮아."
"어? 왜?"
"우리 이제 이사 가서 새로운 학교 갈 거니까."
"응? 우리 이사 간다고?"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놀란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을 때 아차 싶었습니다. 이제 자기도 곧 1학년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는 아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새로운 생활도 조금 익숙해졌고,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부대낄 정도가 되었는데 또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싫은 감정이 든 모양입니다.


그때의 글을 읽으며 한국 생활에 새로 적응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더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공부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익숙했던 환경에서 떠나야 하는 것도 걱정이겠지요. 마음 맞는 새 친구들이 있을지도 잘 모르고요. 


그동안 아이가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칠 때마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쉽게 얘기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너무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의 마음을 바라봤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지금 어른의 마음처럼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물론 씩씩하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조금 더 아이의 눈높이에서 걱정도 되고 두려운 감정도 든다는 걸 이해해 줘야겠습니다.


몇 년 전, 한 젊은 사진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해외를 떠돌아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계속 다른 나라로 이사 가고 환경이 변하면서) 참 많이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물론 괜찮지요. 혹시 나중에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스스럼없이 연락처를 건넨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어릴 때 친구가 평생 친구'라는 이야기를 그다지 믿진 않지만, 관계의 터전이 계속해서 바뀐다는 건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겠지요. 특히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조금씩 엄마, 아빠 품을 벗어나 친구들과의 상호 작용이 커지는 시기다 보니 이사 가는 것이 더 내키지 않을 겁니다.  


"그럴 때일수록 엄마, 아빠가 친구가 되어줘야 해요."


어디선가 들은 이 말의 무게가 새삼 무겁게 느껴집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환경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있어줄 수 있는 건 부모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냉정히 보면 지금의 저는 그런 아빠가 되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참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그저 잔소리 많은 아빠에 불과할 뿐이지요.


아마도 친구 같은 아빠는 결국 못될지 몰라요. 그래도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아빠는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기는 제 자신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기 위한 다짐이에요.


 여기서 지내는 동안 책 짐이 부쩍 많이 늘었다. 싸고 싸도 줄어드는 느낌이 없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도 이거 한 번 해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