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드, 세월을 품다 - 사진가 마쿠스 브루네티

<FACADES - GRAND TOUR>

by 최다운 바위풀

사진가 마쿠스 브루네티.



혼자서 경주로 향하던 스무 살의 그녀는 말했다. 옛 도읍을 지키는 석탑들이 보고 싶다고. 그때 그녀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했었다. 석탑들이 천 년 세월의 이야기를 속삭여 주었다고 했다.


스무 해 전 이야기가 떠오른 건 첼시의 요시 밀로 갤러리를 찾았을 때였다. 마침 그녀도 함께한 기행길이었다. 독일 사진가 마쿠스 브루네티가 찍은 파사드들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밀라노의 두오모 위로, 방돔의 성당 위로 경주의 석탑들이 겹쳐졌다. 세월의 풍파와 함께 대리석 벽면으로 스며든 도시의 역사가 프레임 밖으로 흘러나왔다.


브루네티의 이미지는 수 백, 수 천 장의 사진들을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공예품이기도 했다. 그의 파사드가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을 품은 것도, 인간의 시야를 벗어난 초현실 공간에 서 있을 수 있던 것도 그래서였다.


시작한 지 십오 년이나 지난 그의 프로젝트가 언제 끝을 맺을지는 아무도, 사진가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는 그저 수 백 년 전 돌을 쌓아 올리던 인부들처럼 한 장 한 장 묵묵히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면 그의 사진들 또한 세기를 이어온 그 파사드들처럼 오랜 시간 흘러가지 않을까.




“옛 도읍을 지키는 석탑들이 보고 싶다고. 경주를 찾아 떠나던 스무 살의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시외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땅거미가 몰려오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얼른 너른 들판의 석탑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숨을 고른 그녀가 조심스럽게 탑에 손을 가져다 대었을 때였다. 귓가를 스치는 가을바람에 웅성이는 목소리들이 실려 왔다고 했다. 석탑들이었다. 그것들이 자신들이 지켜봐 온 천 년 세월의 이야기를 속삭여 주고 있었다. 그해 가을, 짧은 여정에서 돌아 온 그녀의 얼굴은 짙은 회상에 젖어 있었다.


스무 해 전 그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첼시의 요시 밀로 갤러리를 찾았을 때였다. 유럽에 있는 한 성당의 모습 위로 경주의 석탑이 겹쳐 보였다. 흰색과 붉은색이 오묘하게 뒤섞인 대리석 벽면에 배인 세월의 풍파를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사진가 마쿠스 브루네티가 만든 밀라노 두오모의 이미지였다. 그도 목소리를 들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그랬듯이 긴 세월 자리를 지켜온 성당이 속삭여 주는 시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을까? 밀라노의 두오모를 보며 경주의 석탑이 떠오른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지 몰랐다.”




“브루네티의 이미지는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선명한 대형인화작품은 마치 눈 앞에 현미경을 대고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거대한 아치문 입구의 상부를 장식한 벽화의 타일 갯수까지 셀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정도가 짐작이 되려나? 이 디테일의 힘이 이미지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창틀에 서 있는 조각상의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였고 첨탑의 가고일은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다리를 박찼다. 오직 디테일을 잘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다고 했던 한 평론가의 말이 생각났다. 서촌의 한 강연회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를 몇 년 뒤 브루네티의 작품 앞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Yossi Milo Gallery, New York.


2018.03.


Fuji X-Pro 2 / Color Skop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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