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머레이 프레데릭스
사진가 머레이 프레데릭스.
(……)
긴 시간 사진 찍는 사람은 어쩌면 매 순간 움직이는 세계 속 존재 그 이미지의 원점에 다가가고자 하는 게 아닐까.
(……)
그곳에서 오래 서 있었던 한 사람. 그의 눈길 속에 담겼을 시간을 헤아려본다.
…장혜령 시인
지난여름, 짙푸른 인도양의 밤하늘에 별빛이 그어놓은 흔적을 보며 시인은 말했다. “존재 그 이미지의 원점”, 태초의 한 점을 가리키는 듯한 그곳에 다가가는 기분이라고. 내 사진을 보며 시인이 써 준 글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긴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이 울림은 첼시에서 만났던 또 다른 사진가를 떠올리게 했다. 호주 사진가 머레이 프레데릭스 이야기다. 그가 찍은 레이크 에어의 풍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치 텅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곳은 완벽한 무(無)와도 같은, 모든 시간의 흔적이 지워진 세상이었다. 호수를 덮은 적막은 별과 바람의 자취마저 사그라뜨렸다.
영원할 것만 같던 그 적막을 깨뜨린 것은 한 장의 거울이었다. 거울은 바깥의 시간을 비춰주고 있었다. 한자리에 공존할 수 없는 안과 밖의 시간이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충돌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시간의 충돌이 고요했던 풍경의 표면을 깨뜨리며 길을 내주었다.
사진가의 거울은 입구였다. 그 길을 따라 몇 발짝만 내디디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인이 말했던 “존재의 원점”을, 세상의 근원을 말이다. 그의 이미지를 본다면 시인 또한 다시 한번 원점을 입에 올리지 않을까.
"시인은 말했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짙푸른 이국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이 그어 놓은 흔적이었다. 지난여름 인도양의 한 섬에서 마주친 시간의 자국이 시인의 마음에까지 가닿았나 보다. 그녀가 써 준 사진의 감상평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녀의 시선은 그날 밤 그곳에 있던 나보다 더 아름답게 풍경을 읽고 있었다. “존재 그 이미지의 원점”이라는, 태초의 한 점을 가리키는 듯한 표현이 긴 울림을 주었다."
"레이크 에어는 호수라곤 하지만 사막처럼 메마른 땅이다. 지난 이백여 년 동안 찰랑거릴 정도로 물이 찼던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라니 어느 정도일지 조금은 상상이 된다. 사진가가 처음 호수를 찾은 때는 이십여 년 전이라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주로 히말라야나 파타고니아와 같은 풍경을 찍었다. 그런데 레이크 에어는 그곳들과는 백팔십 도로 다른 세상이었다. 호수에는 수천 미터 봉우리에 쌓인 만년설도, 대지를 덮은 빙하도 없었다. 프레데릭스가 마음을 빼앗긴 건 아마 그래서였을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없는 무위의 풍경으로 둘러 싸인 세상. 마치 처음 만나는 미지의 어딘가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었으리라."
"그리고 한 장의 거울, 영원할 것만 같던 호수의 적막을 깨뜨린 거울이 있었다. 거울은 사진가의 시야를 벗어나 흘러가는 바깥의 시간을 비춰 주었다. 붉은 노을을 가르는 순백의 하늘이, 우주의 흐름을 거스르는 땅 위의 별 무리가 그렇게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한자리에 공존할 수 없는 안과 밖의 시간이 만났으니 어찌 되었겠는가? 충돌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그 시간의 충돌이 고요했던 호수 표면에 통로를 열어 주었다. 길이 이어지는 곳은 거울에 비친 바깥세상이었다. 몇 발짝만 내디디면 존재의 원점에 닿을 것만 같던 세상은 다름 아닌 그곳이었다."
Robert Mann Gallery, New York.
2018.03.
Fuji X-Pro 2 / Color Skop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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