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보이는 대로 담기
16년 9월 뉴욕
대학 초입부터였으니 취미로 사진이란 걸 가지고 사브작 거린지도 이제 십 년 중반이 되어 간다. 중간중간 바쁘고 여유가 없을 때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최근엔 다시 틈을 내 보려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한 사진기는 아버지가 쓰시던 캐논 F-1. 이후 로봇팔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소니 F-717로 넘어갔다가 미놀타, 펜탁스, 캐논, 파나소닉, 보익틀랜더, 아그파, 토이 카메라 등등 다양한 필름과 디지털을 거쳤다.
요즘 정착한 건 바르낙 IIIf와 12mm/25mm 광각 렌즈 2개, 가끔씩 사용하는 펜탁스와 50mm, 그리고 한 달 전에 들인 니콘 28Ti이다. 바르낙은 노출계와 파인더 병행을 위해 주문 제작 더블 슈까지 마련할 정도로 애정을 들였고, 28Ti도 얼마 안 됐지만 사용감이 좋아 아마 필름 카메라는 지금 있는 것들로 꽤 오래갈 것 같다.
디지털은 최근 활용도가 많이 떨어진 파나소닉 GF-1이 있는데 몇 달 뒤에는 AF가 좀 빠른 놈으로 하나 들여 아이들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 볼까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추석에는 후지 인스탁스도 하나 들였는데 큰 아이가 이것으로 사진을 찍어 주면 좋아한다.
장비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오늘 주절거리고 싶었던 건 내가 찍고 싶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찍는 패턴 사진을 따라 해 보기도 하고, 한 동안은 쨍하면서 독특한 여행, 풍경 사진 같은 것에 빠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잡다하니 이 사진, 저 사진 되는 대로 많이도 찍었었다. 필름값 아까운 줄도 모르고...
그렇지만 돌아보면 내가 가장 찍길 원했던 사진은 늘 거리 사진이었다. '결정적 순간'까지는 아니겠지만, 내가 서 있는 그곳에서 느껴졌던 바로 '그 순간'의 느낌을 사진에 담는 걸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바로 내 눈 앞의 광경을 담는다. 자리를 옮겨서 구도를 잡거나 특정한 순간이 오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걷다가 어떤 풍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멈춰 선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순간을 찍는 걸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담은 풍경은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음을 증거 하는 것이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때로는 내가 있던 시공간의 느낌을 다른 이와 공유하게도 해 준다.
이 사진은 지하로 연결된 배관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화려한 뉴욕의 이미지와 동 떨어진 공간인 듯한 느낌이 들어 급하게 전원을 켜고 찍었다. 마침 길을 건너오던 행인도 함께 담기면서, 비록 수직/수평도 잘 맞지 않았지만 내게는 썩 맘에 드는 사진이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촬영 결과물은, 특히 필름 사진에 있어서, 내 의도와 다를 때가 많지만 가끔씩 건져 올리는 몇 장 때문에 계속 사진을 찍는다. 어찌 보면 나만의 마스터피스 포트폴리오 같은 것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른 이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소중한 의미가 있는 작품의 수집 같은 것이라고 할까.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겠지만 내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는 한은 오래도록 사진기를 곁에 두고 나만의 작품을 꾸준히 모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아주 오래오래였으면 한다. 조금 더 꿈꿔 본다면 아이가 컸을 때 같이 카메라를 들고 여행 가는 것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적어도 십 년은 지난 후의 이야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