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ue myself? - 나의 가치란...

부모가 되고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의 무게

by 최다운 바위풀
"... 오늘날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은 부분적으로 위신(prestige)을 분배하는 방식 탓이다. 부부는 매시간 실용적인 요구에 시달릴 뿐 아니라, 그런 일이 굴욕적이고 시시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단지 요구를 견뎌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이나 자신을 동정하거나 칭찬해주는 걸 꺼릴 수 있다. '위신'이란 말은 등하교시키기와 세탁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들린다. 그런 특성은 상위 정치나 과학 연구, 영화나 패션 같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해로운 훈련 때문이다. 그러나 거품을 제거하고 핵심을 보면 위신은 단지 인생에서 가장 고결하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우리는 인류의 영광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얇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 있을 뿐 아니라, (설령 수십억 인구 사이에 널리 분포된 능력이라 하더라도) 생후 몇 달 된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이고, 사라진 양말을 찾고, 변기를 청소하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고, 식탁에 굳어 있는 기름때를 닦아내는 능력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더 큰 공감과 의연함으로 견뎌낼 수 있도록 비난하거나 비웃고 조롱할 게 아니라 매력적으로 봐야 할 시련들이 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운동회날 / Oct. 2016 / Seoul / Nikon 28Ti + Portra 400

나 자신, 그리고 가족의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은 요즈음, 보통의 이 글은 새삼 예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떠 올리게 해 주었다. 짝꿍과 내가 교차적으로, 집안일과 육아에 누군가 한쪽이 더 많이 시간을 쏟아야 했던 때가 있었다. 3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3개국을 돌아다니며 보냈던, 이제 채 만 3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다. 그 시절을 되돌아 보면 즐거웠던 추억들과 함께, 당시 받았던 여러 스트레스들도 떠올라서 굳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 힘들었던 까닭 중 하나는 '(저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데 지금 여기서 무얼 하지...'라는 무의식 중의 압박감 때문이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족이 모두 같이 있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무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 비슷한 것이다. 당시에는 '차라리 저 밖에 돌아갈 곳이 없다거나, 해야 할 일이 없다면' 스트레스를 덜 받을 텐데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 후로도 혼자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는데, 결론은 우리 머리 속에서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판단의 추'가 바깥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다만 나 자신에게만 비추어 보면 그것이 관습적으로 학습된 가치인지, 아니면 진정한 내 내면의 판단인지는 여전히 헷갈린다.


알랭 드 보통의 윗글은 내가 느꼈던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을 - 바로 그 부분을 잘 짚어내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바깥일에 더 가치를 두는 사회적 '위신'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경단녀(물론 경단남도 될 수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 것도 '안'보다 '바깥'에 더 가치를 두는 이러한 사회적 집단의식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요즘 세상에 맞벌이가 아니면 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번에 얘기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이니 논외로 하자.)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고 사회가 바라보는 '경력'이라는 것에 '안'에서의 일은 포함되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경력'이라는 것이 포괄하는 의미가 넓어진다면 그것이 이런 일로 힘들었던 사람들,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 넓어진 의미를 수용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제일 먼저가 되어야 할 터이고, 그 다음에 사회의 인식이 따라오긴 하겠지만...


낙원 상가 구석진 곳의 한 맥주집에서 고등학교 친구와 술잔을 기울일 때 녀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 그럼 네가 같이 따라가면 되겠네."

"야, 너도 잘 알겠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 내가 해 보면서 느낀 건데 그 생활에서 오는 중압감이 작지 않거든."


그다지 보통의 팬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책은 연애부터 결혼, 육아까지 일상의 세밀한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관조하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되었다. 특히나 결혼한 부부나 또는 결혼을 앞둔 연인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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