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人百色 - 백인백색

No two men are of a mind.

by 최다운 바위풀
어느 날 오후 / Nov. 2016 / Seoul / Nikon 28Ti + Portra 400


강남에서 나름 이름 있는 고등학교를 나온 회사의 팀장님이 고교 동문회를 한 다음 날 이야기를 꺼내셨다.


"야, 어제 남자만 30명 정도가 모였는데 그중에서 직장인, 월급쟁이 하는 사람이 나 포함해 딱 2명이더라."


"오, 그 학교에서 그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의외네요. 그럼 다들 뭐하는 데요?"


"개인 사업하는 애도 있고, 교수도 있고. 광고만 천편이 넘게 찍었다는 성우 녀석도 있고 나이트 상무까지 있더라. 교수하는 녀석은 고등학교 때까지 진짜 공부랑 담 쌓았던 녀석인데 어제 내 앞에 앉아서 얘기하더라고. 'OO야, 내가 니 앞에서 공부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흐흐.'"


"거 참, 역시 사람 사는 모습이란 다양하군요."


"뭐, 어제 만난 애들이 학교 때 좀 놀던 그룹 쪽에 속하긴 했지. 그래도 다양하긴 하더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도 자기 주변에 있는, 남들과 달리 사는 사람들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대형 일간지 기자를 하다가 태국 출장을 다녀온 후, 한국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그곳에 터를 잡았다는 선배의 이야기, 온 세상 오지를 탐험하며 돌아다니는 형님의 이야기 등등.


때로는 이런 삶의 모습이 있다니 부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신기해하기도 하는 우리들 세상 밖의 이야기. 아니, 나의 틀 밖의 이야기들. 하지만 나의 틀이라... 그것이 정답일까? 아니, 그것이 과연 다수의 틀이라고 할 수는 있을까? 이렇게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십 년보다도 한참 전인 이십 대 초반에 떠났던 배낭여행 중의 일이다. 며칠간 머무르던 숙소에서 우연히 그 도시에서 열린 패션 박람회에 참석한 한 무리의 출장객들을 만나 저녁 술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아마도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남자분이 얘기를 꺼냈다.


"난 이른바 SKY나 이런 명문대라는 곳 나와서 대기업 들어간 사람들 있잖아. 강남이나 이런데서 점심시간에 만날 수 있는, 회사 목걸이 메고 우르르 나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보면 괜히 짜증 나.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당시에는 특별히 내가 대꾸할 얘기도 없었고, 그냥 저이는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이의 생각은 자신에게 익숙한 '틀' 안에서 바라 본 시선이었을 뿐이다. 나와 다르고, 내가 알고 있는 틀과 다르고,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다른 곳에 대한 막연한 선호 또는 정반대의 미움 같은 것.


... 11월의 어느 날 오후, 사무실. 긴 시간 진행된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뒤편으로 비치던 햇살의 기운과 난초가 드리운 그림자의 여운을 보며 셔터를 눌렀다. 아무런 색이 없는 무채색 느낌의 풍경이지만 자연스레 느껴지던 편안함이 좋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인백색의 삶이라지만 그 바탕은 모두 비슷한 무채색 일터이니, 그 위에 무슨 색을 입힐지는 결국 스스로의 결정. 그러니 다른 사람이 칠한 색깔에 대해 왈가왈부할 일도,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일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고르고 직접 채색한 색에 대한 자신감만 가질 수 있으면 그걸로 될 일이다. 막연한 선호나 미움도 어찌 보면 스스로의 자신감이 부족해서 일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비슷한 생각들을 참 많이 하는데 늘 도달하는 결론은 똑같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지 못해 늘 같은 고민만 하는 것에 머물고 만다. 그 이유가 내딛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현실 도피의 핑계 거리가 찾고 싶어서인지는 명확치 않다. 내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 단지 표피만 훓고 있는 느낌이라 답답하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고민하면 될 일인지도 의문이고. 어찌 되었든 한가지 바라는 것이라면 그저 내가 지금까지 칠해 온, 그리고 앞으로 선택할 색깔들이 먼 훗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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