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h - 충돌

대한민국, 2016.

by 최다운 바위풀
Gwanghwamun / Dec. 2016 / Nikon 28Ti + Kentmere 400

서촌에 살다 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2016년 겨울, 역사의 현장을 몇 차례 목격하게 되었다. 그중 12월의 세 번째 주말,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두 번째 열린 촛불 집회 현장에서 만난 풍경이다. 경찰의 인벽을 사이에 두고 탄핵 찬성과 반대 집회 인원들이 엇갈려 지나가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고성이 오고 갔고 인벽이 끊어진 사이사이에서는 간간이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당신들은 태극기를 들 자격도 없어. 니들이 무슨 태극기를 흔들어."


"이 빨갱이 새끼들,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한으로 가라."


... 시험 때만 되면 그 어떤 예능 프로보다 재미있다는 백분 토론을 보며 가끔 했던 생각이 있다. 저들은 그냥 자기의 이야기를 뱉어 내기 위해 나온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난 기본적으로 설득이라는 행위에 대한 믿음이 적은 편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남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토론이란 때론 의미 없는 시간 낭비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토론은 누군가의 생각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움직임이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은 이거야'라고 벽을 향해 외쳐 대는 것과 비슷하다.


2016년의 대한민국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4%와 나머지 96%의 차이도 그러하지 않을까. 어떤 이야기와 설득으로도 결코 상대방 쪽으로 움직일 리 없는 머나먼 간극이다.


몇 년간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아 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 떠나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적어도 현재 시점의 나에게는) 이곳에서 살고 지낼만한 소득이 있기 때문이고, 또 내 나라 땅이 아닌 곳에서 산다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만은 않다는 걸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다만 잠깐씩 지냈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기본적인 사회안전망 부족 등의 아쉬운 점이 개선되길 바라고, 그를 위해 필요하다면 내 소득에서 더 떼어가는 것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충돌은 '과연 이 나라에 살아도 좋은가, 아니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맞는가'라는 의문을 던져 주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상식이라면 이것은 충돌이 아닌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곳에서 열심히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저들은, 그리고 이 사태의 주범이자 공범이면서 어딘가에서 또 다른 집권 계획을 세우고 있을 그들은, 이 나라를 어떤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 그리고 결국 그들의 음모와 조작이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내 남은 삶 동안 이 땅을 딛고 서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하는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부끄럽지만, 내겐 이곳에 남아 힘든 투쟁을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용기 같은 건 없다. 다만 이 사회가 점점 더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가는 모습을 보느니 그 더러운 꼴 최대한 안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물론 내게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방법이 생길 리는 만무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마음이 그쪽으로 기우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올해의 마지막 휴가를 앞둔, 12월 어느 날의 착잡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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