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yon, France.
03년 11월, Lyon
천천히 걷고 천천히 바라보기.
뒷 골목 거닐기.
때때로 길 잃기.
예전부터 여행을 떠날 때면 마음 속에 늘 되새기던 생각들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장소들을 가 보는 것도 좋지만,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을 만끽하며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한다. 파리에 가면 제일 처음 가 보고 싶은 곳이 에펠탑이 아니라 중심가의 번잡함을 벗어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인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길을 걸으면서 마주한 이미지들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지금 다시 찾아가라면 어딘지도 모를, 지도도 보지 않고 걸어 다녔던 시간 속에서 만난 풍경들. 파리 뒷골목에서 본 오래된 트럼프 카드를 팔던 골동품 가게. 이태리 북부 항구도시 제노아의 후미진 골목에서 만난 손님을 기다리던 창부들. 베이징 뒷골목의 꼬치 가게에 앉아 점원들과 함께 구경하던 길거리 막싸움의 기억까지.
2003년 겨울, 유럽 여행을 시작했을 때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도시가 바로 Lyon이었다. 프랑스의 많은 도시들 중에 왜 하필 그곳이었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곳은 '꼭 한번'이라는 생각을 떠나기 전부터 했었다.
일요일 아침 광장의 벼룩시장에서 도시의 흑백 정경을 담은 엽서들을 만났다. 우표를 붙였던 자국, 우체국의 소인, 연필로 썼다 지운 글의 흔적까지. 시간의 느낌을 고스라이 담고 있는 엽서들 몇 장을 사서 생각나는 이들에게 부쳤다.
저녁을 먹은 후 음악 소리가 시끄러운 유스호스텔의 바를 벗어나 산책을 나섰다. 휴일 저녁의 여유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대는 중심가. 가게에서 흘러 나오는 따뜻한 느낌의 빛과 손을 잡고 걸어오는 커플의 느낌이 좋아 찍었던 한 컷. 십수년이 지난 그해 겨울 Lyon의 시공간 속에 있는 것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느껴지는 감정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되새길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의 힘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도 가끔 한다. 물론 사진기보다 내 눈으로 직접 담아 두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Lyon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가 보고 싶다. Lyon 방문 20주년인 2023년 즈음으로 목표를 정해 보고 정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