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기억의 환기

사진의 역할에 관한 소고

by 최다운 바위풀

이 글은 사진/문화 매거진 B급사진(https://bphotokr.com)에 게재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아마도) Minolta Himatic 7s-ii + Kodak TMY 400


할머니 생전에 아버지와 함께 고북에 갔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얼마 전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몇 년 뒤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할머니와의 기억, 그리고 그때의 감정을 내게 되살려 주었다.


보는 이에 따라, 문맥에 따라, 그리고 의도에 따라 사진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의 기능을 할 수도 있고, 기록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으며, 또는 광고나 홍보의 목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이 해낼 수 있는 여러 역할 중에 중요한 것이 바로 '기억의 환기'라고 생각한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화자(사진을 찍은 이)가 서 있었던 오래전 시공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는 힘은 사진이 태생적으로 품고 있는 중요한 힘 중 하나이다. 특히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전달하는 시각적 자극은 글이나 그림 등의 다른 매체에 비해 사진이, 환기의 측면에서 보자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이다.


환기의 범위는 처음에 얘기한 나의 경험처럼 굉장히 개인적일 수도 있고, 반면 어떤 경우에는 다수의 군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기억의 환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사라진 쌍둥이 빌딩을 배경으로 한 맨해튼의 전경 사진이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집단적 기억의 환기에 해당할 것이다.


예전에는 별로 좋아하는 표현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내 생각을 바꿔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라는 말이다. 난 이 말이 사진이 가진 기억에 대한 환기의 힘을 을 잘 드러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오래전 존재했던 시공간의 한 순간을 간직한 채 세월을 보내어 그것을 먼 훗날까지 '남겨 주는' 것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사진은, 일부의 제의적 성격을 제하고는, '아우라'를 지닐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의 환기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진은 충분히 '아우라'를 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벤야민이 의미한 절대적 의미의 '아우라'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에서만 의미 있게 존재하는 '아우라'라는 차이는 있을 테다. 위의 사진은, 다른 이에게는 아닐지라도, 나에게는 분명 의미 있는 '아우라'를 띄고 있는 것이다.


사진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왜 사진을 찍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답할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사진이 가진 기록의 힘에 이끌려 사진 행위를 한다고 답할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기록의 힘이란 글자 그대로의 단순한 기록, 즉 다큐멘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간직하고, 과거 내가 존재했던 시공간을 먼 훗날까지 '남겨' 주는, 사진이 가진 '환기'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게 바로 많이 이들을 이끌리게 하는 사진이 가진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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