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청년 케난
이 글은 사진, 문화 커뮤니티/매거진 B급사진(https://bphotokr.com)에 게재한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십 년 전 즈음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던 때였다.
무더웠던 9월의 끝 무렵, 이란을 지나 터키의 동부로 접어든 지 이틀째가 되었다. 하루 종일 열심히 페달을 밟았지만, 여전히 목적지까지는 요원해 보였고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넓게 펼쳐진 구릉 사이로 외로이 난 길을 달리던 일행과 나에게 저 멀리 양 떼 사이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혹시 재워달라고 해 볼까?'
"헤이, 여기요~. 우리 혹시 오늘 하루만 신세 좀 질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고함 소리를 듣고 다가 온 청년과 다시 손짓 발짓을 섞어 가며 얘기를 나누었다. 청년은 우리의 요청에 별 고민을 하지 않고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좋아. 재워 줄게."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친구가 바로 양치기 청년 케난, 터키 동부 오메로와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쿠르드 족 친구였다. 케난이 살고 있는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도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시골 국도변의 작은 마을이었다.
케난의 뒤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는 동안 온 동네 꼬마 녀석들이 신기한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졸래졸래 따라붙었다. 이건 마치 호떡집에 불 난 격이다. 녀석들 눈에는 커다란 자전거와 짐 꾸러미를 끌고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마냥 신기한 모양이었다. 케난과 마을 어른들의 호통 몇 번에 우르르 흩어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떼 지는 못 했다. 아마 어쩌면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오는 외국인이 아닐까 싶었다.
사실 우리를 궁금하게 여긴 건 동네 꼬마들만이 아니었다. 그날 저녁 케난의 집에는 온 동네 청년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곳은 그날 완전히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다 같이 모여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들이 쿠르드족임을 알았다. 알고 보니 이 마을은 쿠르드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케난네 집은 누나,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한 집에 살고 있었다. 케난의 어머니와 누나는 낯선 이방인들이 불쑥 찾아갔는데도 거리끼지 않고 우리를 아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케난네 집은 그리 여유 있는 살림살이로 보이진 않았는데 우리 때문에 모여든 동네 청년들에게까지 식사 대접을 하느라 되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힘든 내색 없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케난과 식구들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에도 우리는 여전히 마을의 최대 관심거리였는데, 난 아침 일찍부터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 하에 끌려 다니며 온 동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 집에 들어가서 가족사진을 찍어 주고, 또 저 집으로 옮겨서 가족사진을 찍어 주었다. 집 공사를 하고 있던 마을 이맘 부부의 사진도 찍어 주고, 포경 수술을 하고 침대에 누워 부동자세로 있던 꼬맹이 녀석들의 기념사진까지. 그날 아침 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오메로와 마을의 동네 사진사가 되었다.
쿠르드족 하면 제일 먼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PKK(쿠르드 노동자당)일 것이다. 터키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오랜 기간 무장 투장을 벌여 온 소수 민족으로 세계 대전 당시 터키 내 소수 민족으로 학살당한 기억이 있는 아픈 역사를 간직한 민족이다. (물론 터키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은 자국 내 쿠르드 족 학살은 없었다는 것이지만.) 최근 몇 년 간은 PKK보다는 이라크전, 중동의 ISIS 대항전 등에 맞서 지역군으로서의 역할이 언론에 훨씬 더 많이 비추어진 그들의 모습이다. (아마 그들로서는 내심 터키로부터의 독립을 바라며 일정 부분 연합군 역할을 수행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바람이 현실이 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다만 내가 만난 케난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저 정 많고 호기심 많은, 때 묻지 않은 시골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언론에서 보여 주는 쿠르드 전사의 모습보다는 케난처럼, 피를 보는 투쟁보다 단지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들 대부분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씩 쿠르드 족 관련 기사를 접할 때면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아무 탈 없이 있을는지. 그들 중 누군가는 저 험한 일에 자신의 신념을 걸고 휘말리게 되었을지. 아니면 여전히 양 떼를 몰고 마을의 소일거리를 하며 몸 건강히 지내고 있을는지.
기회가 된다면 꼭 사진을 들고 그곳을 다시 찾아가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먼 일이 되었다. 다만 내가 이들을 잊지 않고, 이 사진을 잊지 않고 그들을 기억한다면, 언젠가 꼭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All photos by Pentax *ist-D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