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거부의 본능

선택과 배제

by 최다운 바위풀

이 글은 사진, 문화 커뮤니티/매거진 B급사진(https://bphotokr.com)에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통의동 / Feb. 2017 / X-Pro 2 + Color Skopar 21mm


시선은 선택이다. 뭔가를 응시한다는 것은 거기에 시선을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시야의 나머지 부분은 관심 범위에서 제외하겠다는 뜻이 담기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생명의 본질인 시선은 무엇보다, 거부이다.

-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아멜리 노통브


사진을 찍는 행위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 - 그것이 직사각형이든 정방형이든 - 나의 시선을 가두는 것이다. 프레임 안에 무언가를 들여놓기를 선택하는 것도, 또는 내어놓기를 결정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따라서 내 앞에 놓인 무언가를 틀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 이든 간에 결국 거부의 행위이다. 난 너를 담지 않을 거야라는 의지의 표명.


노통브는 시선이 '집중'과 '거부'의 과정이라고 했다. 사진적 행위의 외견 상 첫걸음이 바로 시선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 즉, 내면에서 먼저 이루어질 사유의 과정 다음에 이어지는 물리적 바라봄의 행위인 시선 - 사진을 찍는 것은 나의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하고 그 외의 것들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통한 ‘선택-집중’과 ‘배제-거부’의 결과물이 곧 내가 담은 사진이 된다.


얼마 전까지 매일 들고 다니던 바르낙의 바디캡은 25mm와 12mm 두 개의 렌즈였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거리 풍경 담기를 좋아하는 내게 이 두 개의 렌즈는 꽤나 많은 것들을 한 번에 담아 주는 좋은 도구였다.


하지만 노통브의 말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나의 광각 선호는 일종의 결정 장애인 것 같기도 하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무언가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떻게 선택하고 배제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문자 그대로 ‘다’ 담아 주는 광각을 편애할 수밖에.


올해부터는 나의 시선을 조금 더 좁혀 보기로 했다. 환산 기준 32mm, 52mm 2개의 화각. 아직까진 피사체와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웠나 하는 기분에 가끔 놀라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새로운 화각이 보여 주는 세상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다시 한번 노통브의 말에 비추자면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거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시야는 좁아졌지만 대신 좁아진 틀 안에 담길 피사체의 정수를 더 깊이 내어 보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사진을 찍는 시선은 넓이와 함께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 내가 담는 사진의 시선은 곧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므로, 시선의 깊이를 쫓는다는 것은 나 자신의 내면을 깊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포용이 아닌 거부를 통해 갈고닦을 내 시선의 깊이가 어디가 될진 모르겠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금보다는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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