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jubljana, Slovenia
06년 11월 Ljubljana
이곳에 내어 놓는 사진과 생각들은 시간보다는 그때그때 감정의 흐름에 따라 선택한다. 문득 머릿속에 떠 오른 순간의 감정 같은 것에서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식이다.
요 며칠간은, 짝꿍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공격받은 야수처럼 날카로워져 있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모두 나를 힐난하는 것 같았고, 왜 '나'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느꼈던 편안함의 기억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2006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가야 할 곳들에 대한 자료를 많이 찾아보았다. 두꺼운 실크로드 역사책을 읽어 보고, 발칸반도 전쟁과 터키 쿠르드 족 항쟁의 역사를 찾아보았다. 차곡차곡 모은 자료들은 텍스트 파일로 저장하여 60GB 아이팟에 저장을 하였다. 그렇게 저렇게 여행 준비를 하던 중 광양의 지인 집에 들를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 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류블랴나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었다.
"류블랴나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시가 간직한 그만의 아름다움 때문에 얼마 전부터 서유럽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 받기 시작하고 있는 곳이다."
이 문구가 내 눈길을 잡아 끈 것은 도시의 이름이 간직한 뜻 때문이었다.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래서 난 전에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이 도시에 대한 작은 환상을 간직한 채 그곳에 갈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행을 떠난 지 6개월, 드디어 Ljubljana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만 지나면 서유럽으로 들어간다는 안도감과 '사랑스러운' 이름의 이 도시에 도착했다는 기쁨 때문이었을까. 모든 풍경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기분이었다.
둘째 날 아침,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개켜 놓고 카메라를 들었다. 건물 꼭대기에 자리한 유스호스텔의 도미토리 풍경. 비스듬히 기울어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11월의 쌀쌀한 아침 공기를 피해 따뜻한 솜이불 품으로 기어 들어간 여행자들. 그리고 군데군데 널려 있는 옷 가지들. 작은 다락방 공간을 채우고 있는 하나하나들의 편안함이 모여 그 날 아침, 그곳의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사진을 보면 여전히 그때의 그 기분이 느껴져서 마음을 편안케 한다.
다행히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비교적 원만히 해결이 되었다. 물론 앞으로 산적해 있는 문제들이 더욱더 많지만 적어도 시작부터 어긋나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