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기억하라"
이 글은 사진, 문화 커뮤니티/매거진 B급사진(https://bphotokr.com)에 쓴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수전 손탁, 이재원 옮김, 시울.
죽음과 소멸을 연상시키는 건 변할 수 없는 사진의 본질이다. 19세기에 사진이 탄생하면서 사진의 부흥을 이끌었던 시작점도 바로 이러한 죽음, 사라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초창기에 산업으로서의 사진을 이끌고 확장시켰던 것은 초상 사진이다. 이는 자신의 흔적을 간직하고 후대에게 남기고자 한 당시 대중들의 욕망에 부응한 것인데, 초상 사진은 필연적으로 소멸의 운명을 그 품에 안고 있었다. 언젠가는 죽고 기억에서 사라져 갈 피사체의 운명처럼 말이다.
이 소멸과 죽음의 연상은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래되어 이제는 사라진 물건, 자연, 건물. 어떤 것이 되었든 “죽음을 기억”하는 사진의 본질을 역행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며칠 전 들른 ICP의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 든 Inge Morath의 <New York>에 담긴 1997년 타임스퀘어 광장의 사진은 내게 이러한 사진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당신은 이 사진에서 당신만의 "메멘토 모리"를 느낄 수 있는가?
내게는 다름 아닌 LG semiconductors이다. 이제는 사라져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는, 한 때는 국내 굴지 대기업의 주요 계열사였던 회사, LG 반도체.
Inge Morath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저 회사가 뭔지, 저 마크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을 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녀가 97년부터 99년까지 했던 작업은 1950년대부터 약 40여 년 간에 걸친 자신의 뉴욕 사진을 집대성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의 이곳저곳과 함께 이 도시의 심장, 타임스퀘어 광장의 한 때도 그래서 같이 사진에 담았을 것이다.
IMF 이후 DJ 정부 주도의 대기업 간 빅딜이 추진되면서 LG가 반도체 사업을 결국 포기하고 현대에 넘긴 것이 99년이다. 그러니 이 사진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기 직전이었던 그 회사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자신도 모르게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마주친 사진 한 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역사의 작은 한 페이지. 이것이 바로 사진이 간직한 힘, 사진이 내게 보여주는 묘미 중 하나이다.
사진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의 한 “순간을 베어 내어 꽁꽁 얼려” 놓는다. “얼려진” 사진은 스스로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역사의 작은 한 단면을 제 품에 안는다. 흘러간 시간 속 한 "순간"의 죽음과 소멸을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