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픽사 애니메이션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메시지를 탁월한 상상력과 표현력으로 담아낸다. <인사이드 아웃>은 사람의 감정을, <코코>는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보는 사람이 어떤 상황과 감정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영화는 다르게 느껴질 테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문득 도움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이번 <소울>에는 인생의 한 부분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영화였다. 일상과 주변의 소중함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생각하게 만드는 스토리와 인물 설정이 곳곳에 드러났다.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보았다.
주인공인 조 가드너는 뮤지션으로서 재즈바 연주자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도 피아노 연주 생각에 빠지고 뮤지션이 되기 위해 정규직 제안도 고사할 정도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오직 그 꿈만을 향해 달려가다가, 뮤지션이 되는 꿈을 이룬 날 맨홀에 빠진다. 신나서 맨홀이 있는 줄도 모르고 걸었던 것이다.
맨홀에 빠져 도착한 곳은 '태어나기 전의 세계'. 그곳에서도 재즈바 공연만을 생각하고, 불굴의 의지 끝에 겨우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드디어 재즈바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그토록 원하는 성취를 이룬 것이다! 앞으로 매일 재즈바에 나와 연주를 하면 된다. 그런데.. 조 가드너는 그때부터 공허함을 느낀다. '재즈바 연주자가 되기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무엇을 바라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조 가드너가 이렇게 공허함에 빠진 이유는 삶의 가치를 몽땅 직업에 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무언가에 가치를 두지 않은 채였기 때문에 오히려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휩싸인 것이다. 우리도 살다 보면 '직업'이나 '공부'를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사회 속 '평가'의 잣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붓지만 그 결과는 공허함이나 좌절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직업, 인간관계, 연애, 가족 등 다양한 곳에 우리 삶의 가치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가지가 변곡점을 지나면서 힘들어할 때, 다른 무언가를 찾아 기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을 일상의 여러 부분에 나누어 주면서 밸런스를 찾아가야 한다.
<소울>은 현실과 영혼 사이의 애매한 어떤 공간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는 자신의 일에 몰입하여 무아지경에 이른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앞을 보지 않고) 파랗고 영롱한 빛에 쌓인 채 몰두한다. 그리고 그들 바로 밑에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하여 삶의 모든 영역을 점령당한 사람들의 영혼이 있다. 검고 커다란 괴물 같은 모습을 한 이들은 똑같은 말만을 외치며 돌아다닌다.
몰입하여 푸른 영혼이 되었다가도 자칫하면 집착하는 검은 영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우리는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다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을 하다가 종종 몰입을 경험한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르고, 주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러한 순간이 이루어낸 성취는 삶을 더 풍성하고 가치롭게 만들어 준다. 다만, 이 몰입이 과도해지면 위험하다.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리고 매일 똑같은 생각만 하며 눈을 감게 된다. 그래서 몰입은 그 '적당선'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에는 '스파크'가 등장한다. '태어나기 전의 세계'에 있는 영혼들이 지구로 가기 위해서는 마지막 퍼즐인 '스파크'를 채워야 한다. 22는 그 스파크를 찾지 못해 수많은 영혼이 지구로 가는 와중에 혼자 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문제아' 22에게는 내로라하는 멘토들이 붙어왔다. 마더 테레사, 간디, 링컨 등 이들은 모두 22에게 삶의 목적을 찾길 원했다. 자신들이 생전에 일했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구에서 무얼 하고 싶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22는 그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새로운 멘토 조 가드너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그의 몸에 들어가 지구를 체험하게 된다. 피자 한 조각,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는 사람, 음악에 대한 진심을 표현하는 아이, 꽃잎 등을 보면서 22는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느낀다. 그 상태로 '태어나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자 22에게 드디어 지구 통행권이 생긴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류의 목적이 아니라, 22는 일상의 작은 요소에서 행복을 느꼈고, 그걸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은 22 외에도 이발사가 있다. 그는 수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이발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삶에 대해 그는 만족한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그가 삶의 목적 자체를 수의사에 두었다면, 영원히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을 찾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즐겁게 일한다.
조 가드너는 항상 똑같은 이발소에 갔지만, 이발사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양이가 된 순간이 처음이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전에는 안 했어?'라고 묻는 조 가드너의 질문에 이발사는 '전에는 이런 거 안 물어봤잖아, 재즈 이야기만 하고.'라고 답한다. 조 가드너가 재즈바 뮤지션이라는 목적에 매몰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묻고 들으려 했다면, 새로운 삶을 더 빨리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소울>이 전하고자 했던 이런 메시지들이 인생의 어느 순간, 문득,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