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패터슨>은 패터슨 지역의 버스 운전기사인 패터슨의 일주일을 담고 있다. 패터슨의 일주일은 무섭도록 반복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그는 글감을 찾아내 시를 쓴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똑같은 일상에서 창작의 소재를 찾아내도록 만들었을까?
패터슨은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손목시계를 확인하면서 기상한다. 자고 있는 아내를 안아주는 것을 잊지 않고 부엌으로 나와 시리얼을 먹는다. 버스 운행을 하기 전 시를 쓰다가 동료 기사와 짧게 대화를 나눈 뒤 똑같은 루틴으로 버스를 운전한다. 매번 똑같은 길을 운전하니 핸들의 방향도,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똑같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면 아내가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흰색과 검은색, 새로운 도전을 좋아한다. 온 집 안을 희색과 검은색 패턴으로 물들이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고 미래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반려견 마빈과 함께 바에 향한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매일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글감을 찾아내 틈틈이 시를 쓰는 것이다. 아침밥을 먹을 때 옆에 있던 '성냥', 손목시계에서 영감을 받은 ‘시간’, 그리고 항상 그의 곁에 있는 ‘아내’ 등이 소재가 된다. 매일 보는 것들에 대해 지겨움을 느끼기보다는 새로움을 발견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 영화에 복선이 있다면 바로 금요일이다. 위의 일상과는 조금 다른 사건들이 발생한다. 아침에 아내가 패터슨보다 먼저 일어나 있었고 버스는 운행 중에 고장이 났으며 강아지 마빈은 유독 낑낑거린다. 바에서도 사건이 발생하여 패터슨은 평소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는 토요일 밤. 잠시 외출에 다녀온 사이 마빈이 패터슨의 시가 적힌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웬만한 사건에는 감정이 변하거나 놀라지 않았던 패터슨이지만 이번만큼은 크게 낙담하고 풀이 죽는다.
다음 날 아침, 패터슨은 기분 전환을 위해 산책을 나간다. 잠시 숨을 고르려 앉은 벤치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자연스레 옆에 앉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공감대가 무르익을 무렵, 남자는 패터슨에게 빈 노트를 건네며 이렇게 말을 한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어떤 안경을 쓰고 계세요?'
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패터슨은 '시의 소재'라는 안경을 썼다. 그래서 똑같아 보이는 일상에서 패터슨만의 소재 관찰이 가능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안경이 존재하는데, '글감', '영상 소재', '디자인 레퍼런스', '사진의 피사체' 등이 있다. 주로 어떤 것에 빠져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즉, 위의 질문을 다시 풀어보면 '무엇을 할 때 행복하세요?'라고 할 수 있겠다. 패터슨은 시를 쓰는 행위가 좋아서 이를 지속하기 위해 일상 속에서 다름을 발견했다. 그처럼 좋아하는 무언가에 진심일수록 관점 안경은 진가를 발휘하여 일상에서 작은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사진작가가 똑같은 길에서도 날씨와 빛에 따라 다른 느낌의 사진을 찍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덕분에 일상이 더 풍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좋아하는 것이 없어서 나만의 안경이 없다? 혹은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텅 빈 페이지는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니까. 이런저런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공허함을 이기고, 더 잘 맞는 안경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고 있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