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영지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이 왔다. 이게 얼마만인지. 갑작스러운 연락에 몇몇 기억들이 스쳐갔다.
20살 3월, 과 모임에서 처음 만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한강으로 소풍을 갈 때도, 노천 극장에 모여 짜장면을 먹을 때도 우리는 함께였다. 같이 교양 수업을 들으며 기말 발표 직전에 잠수를 타버린 팀원을 욕하기도 했고 서로의 애인에 대해 가감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린 청춘의 나이답게 우리 대화의 주제는 주로 연애였다. 영지는 주로 짝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해, 나는 애인이 얼마나 못된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영지는 계속 좋아하는 사람이 바뀌면서도 진심이라고 했고 나는 남자 친구를 계속 만나면서도 그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모든 판단과 결정이 처음이었고, 흐릿했던 20살이었다. 줏대도 없고 고개 돌리면 바뀌는 마음 때문에 우리들의 대화는 답 없이 순수하면서 사실 좀 웃겼다.
그래도 그 대화 덕분에 우리는 더 끈끈해졌다. 딱딱 떨어지는 대화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감정과 관계랄까. 20살이 되어서도 이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갓 어른이 된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 속내와 허물까지도. 어떤 가면을 쓰고 있는지, 어떤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그래서 21살이 되어, 편입을 준비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망설였던 것 같다. 같은 학교에서 매일 보는 소중한 친구를 잃기 싫은 마음 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결국 영지는 수능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집이 멀어서 기숙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아예 집으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영지가 수능을 준비하는 내내 우리는 연락을 거의 할 수 없었고, 종종 만나고 싶다는 말에 나는 수원까지 기꺼이 갔다. 단 2시간을 보기 위해 왕복 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좋았다. 2시간 동안 공부 힘들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괜찮았다. 다만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고, 자꾸 옅어지는 관계를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영지가 새로운 학교에 입학을 하고 22살까지도 우리는 종종 만났다. 당연히 대화의 주제는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공부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만큼 우리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나 또한 그간의 변화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곤란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그때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포장지가 쌓인 듯 꾸며진 대화를 나누는 마음이 조금은 씁쓸했다.
관계가 옅어지고 있다는 직감은 맞았고, 자연스레 우리는 '인스타 친구'가 되었다. 종종 인스타그램으로 잘 살고 있구나, 정도를 확인하는. 너무 가까운 대화를 나누었던 탓에, 갑자기 느껴지는 서로에 대한 무지가 낯설었던 것일까. 카카오톡 알림에 뜨는 그녀의 생일에 연락을 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작별 인사도 나누지 않고 작별한 듯 찜찜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25살이 된 지금, 그녀에게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이다. 어쩐지 나는 바로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고심을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조금은 정성을 들여 답장을 보내고 싶어서 읽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 주 토요일은 영지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20살에 너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고, 즐거웠다고, 하지 못했던 말을 꼭 하고 오고 싶다.
최은영의 소설, <내게 무해한 사람> 속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 마주하게 된 그 시절과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때의 마음
그 단단한 시간의 벽을 더듬는 사이 되살아나는
어설프고 위태로웠던 우리의 지난날
기억이 옅어지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때 우리는 그랬지, 과거의 너와 나를 현재의 내가 좀더 객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해주기도 하면서. 영지가 먼저 연락해 준 덕분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때의 마음을 되살려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