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며
힘들었지만 이 순간이 언젠가 좋은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슬아 작가의 산문집 중 어딘가에서 본 문장이다. 꽤 인상이 깊었는지, 이슬아 작가를 볼 때마다 생각 나는 문장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훌륭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슬픈 일이 발생할 확률이 크다. 그래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정성은의 칼럼 속 문장이다.
위 문장들이 우리가 삶을 지탱하는 데 큰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명의 삶이 있다면, 100개의 배울 점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인생과 경험은 누군가에겐 깨달음이 된다. 따라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순간이 언젠가 글과 그림이 되어 타인에게 어떠한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꽤 괜찮은 극복 방법 아닐까?
가끔 나는 친구의 아픔에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친구가 힘든 일을 겪어서 울상을 지을 때, 너무나 위로가 되고 싶었지만 (아픔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그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 말문이 막혔다. 뒤늦게 카카오톡으로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도 위로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설령 그게 친구에게 도움이 되었을 지라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의 수많은 아픔을 다 알 순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되도록이면 많이 알고 많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읽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책에는 수많은 아픔을 가진 수많은 상황의 인물들이 있고, 그들의 상처와 감정은 꽤나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어렴풋하게라도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언젠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소설 등 문학 작품은 슬픔을, 아픔을, 죽음을 인지하라고 일러주는 버튼 같다. 바쁘게 살다가 어쩌면 꽤 오랫동안 잊었을지도 모르는 그 아찔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너무 길게 잊고 있다가는 크게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감각들이 담긴 상자 같기도 하다. 가령 '단순한 진심'과 '비행운'같은 소설이 유독 그렇다."
정세랑 작가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책을 많이 읽거나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은 자기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이야기를 흡수해서 유한한 삶을 무한하게 만들어요.
그만큼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준다. '나'에서 '타인', 그리고 '사회'에까지. 품을 수 있는 외연을 확장시켜준다.
지금은 이렇게 잘 모르는 감정과 경험을 책을 통해 채우고 있지만, 살다 보면 처음 마주하는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위의 문장들을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내가 겪는 것들이 언젠가 유사한 일을 겪는 다른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될 것이라고. 아픈 일은 되도록 겪지 않는 것이 좋지만, 그런 삶은 거의 없으니까. 앞으로 살면서 마주할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 위에서 언급한 정성은의 칼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105/1047676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