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러 온 미국에서, 자아실현을 위한 도전은 후회 없는 찬란한 실패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나리> 속 제이콥은 없는 살림에 빚까지 얹어 농사에 도전한다. 언제까지나 병아리 감별사를 할 순 없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거 해서 대박 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는 도전이다. 그렇게 가족들까지 그를 따라 미국 아칸소의 바퀴 달린 트레일러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방인으로서 미국에 사는 삶은 쉽지 않다. 낯선 땅에서 제이콥, 모니카, 두 아이가 의지할 데라곤 서로 밖에 없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그런데, 뭉쳐야 하는데, 헤어짐의 가능성은 도처에 사리고 있다. 데이빗의 심장이 아프고 농사는 자꾸만 위기에 봉착한다.
그런 현실에 모니카의 엄마이자 데이빗의 할머니가 왔다. 미나리와 함께. 잠시 할머니 역할을 한 윤여정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꺼내보자.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보면 보통 할머니는 속상해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라고 할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바퀴 달린 집이야? 재미있네!'라고 하면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잖아요.
그렇게 표현된 할머니는 그야말로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였다. 평온과 유쾌함의 사이랄까. 만사를 걱정하기보다는 만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데이빗의 심장이 아파서 조심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도, 뱀이 많아서 멀리 가면 안 된다는 누나의 말에도 할머니는 괜찮다고 데이빗의 손을 잡고 숲 속 개울가에 미나리를 심으러 간다. 맑은 물 곁에서 잘 자라는 미나리를 보며 원더풀~하고 노래를 부르다가 실제로 뱀이 지나가도 놀라지 않는다. 조용히 있으면 알아서 지나간다고. 데이빗이 마운틴듀 대신 오줌을 담아 주었을 때도, 오히려 괜찮다고 하는 건 할머니였다. 항상 밥 잘 챙겨 먹으라고 걱정하는 우리 할머니와는, (윤여정이 의도한 대로) 정말 달랐다.
포털 사이트에 '미나리 효능'을 검색하면 '정화', '해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나쁜 것은 빼주고 좋은 것만 남겨준다는 말이다. 미나리와 함께 할머니의 태도도 2가지에 해독 작용을 발휘했다.
데이빗의 심장이 호전되면서 뛸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잠든 적 없는 가족들이 마루에 나란히 잠들 수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면 데이빗의 심장은 계속 심각해졌을지도 모른다. 또, 그날 농장이 망가지지 않았다면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가족들이 헤어지지 않고 뭉칠 수 있게, 그래서 타지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정화의 기능을 해주었다.
가끔은, 모든 상황을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낯선 땅이라는 것에 개의치 않고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가, 그걸 잘 알고 있는 할머니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