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매의 여름밤>
누나 옥주와 남동생 동주는 여름 방학, 아빠를 따라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게 된다.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와 갈 곳을 잃은 고모의 상황이 겹쳐 고모도 함께 할아버지 댁에 살게 되고, 그렇게 두 남매의 더부살이가 시작된다.
오빠(작은 남매의 아빠)는 이혼을 하고 신발을 판매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재개발 예정 지역의 지하방에서 작은 남매와 살다가 할아버지 댁으로 오게 된 것이다. 여동생(작은 남매의 고모)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남편과의 불화로 친구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이혼을 고민하며 담배와 술을 찾는다.
오빠 힘든 거 아니까, 가만있었던 거지.
이들은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 힘들었을 동생을 오빠는 진정으로 위로하고 사이좋게 아버지의 생신과 건강을 챙기기도 한다. 다만 조금은 계산적이다. 둘 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집을 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안 좋긴 하지만 서로 무언의 이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누나인 옥주는 생각도 많고 철도 들었지만 사춘기다. 쌍꺼풀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빠가 팔고 있는 신발을 훔쳐서 팔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따뜻해서, 든든하게 동생과 할아버지를 챙긴다. 동생 동주는 귀엽고 순수하다. 반딧불이처럼 집을 밝혀주는 빛이랄까. 먼저 할아버지 곁에 다가가고, 가족의 분위기를 띄운다.
우리가 언제 싸웠었나?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투닥투닥 싸운다. 그래도 그 싸움은 오래가지 않는데, 먼저 사과하고 금방 잊는 순수함 때문이다. 이들이 매일 싸워도 사실은 돈독한 관계임을 보여주는 장치는 여럿 등장한다. 동생이 건네는 방울토마토, 국수, 라면 따위를 받아들이는 누나의 모습이 그렇다.
작은 남매와 큰 남매는 서로를 챙기고 위하는 우애가 있다. 다만 작은 남매는 감정을 드러내고 투닥거리고 화해하지만 큰 남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이해를 바란다. 참고 살다가 한두 번씩 툭툭 말하는 정도랄까.
사춘기 시기의 옥주는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집을 파는 행동을 보며 너무하다고 화를 내지만 사실은 자신도 아버지의 신발을 훔쳐다 파는 행동을 한다. 또한,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함께 만나러 가자는 동주의 말에 '너는 자존심도 없냐'며 옥주는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모한테는 '고모도 엄마 보고 싶어?'라고 묻는다. 꿈에 나온다는 고모의 대답에 '어떻게 그래..'라고 하면서 자신도 엄마를 만나는 꿈을 꾸고, 마지막에는 펑펑 운다. 즉, 이익을 따지기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는 중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옥주도 동주도 모두 어른이 되면, 꼭 큰 남매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해타산을 따지고,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어른이 되면 말이다. 영화에서 작은 남매는 처음에는 콩국수, 중간에는 비빔국수, 나중에는 라면을 함께 먹는다. (그 순서대로) 건강한 콩국수가 비빔이 묻는 비빔국수가 되고 조미료가 묻은 라면이 되어도 결국은 면인 것처럼, 작은 남매가 큰 남매가 되어서도 우애는 지금만 같기를 바라본다. 때가 묻고 세상 때문에 힘들어도,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는 마음만은 소중히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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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현실과 계절감이 다른 영화를 좋아한다. 겨울에는 여름, 여름에는 겨울 배경이 좋다. <남매의 여름밤>이라는 좋은 작품을 작년에 보지 않고 지금 보아서 유일하게 좋은 점이다. 여름 특유의 진한 초록색 이파리, 귀뚜라미 우는 소리, 더운 공기가 느껴지는 시골의 배경은 여름을 조금은 기다리게 만들어 주었다. 여름이 오면 시원한 콩국수를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