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신입사원 시절 나에겐 ‘퇴근 후 번개’ 메이트들이 있었다. 바로 동기인 U와 S. 와인을 좋아하는 둘 덕분에 퇴근 후 마시는 와인의 맛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어느 정도였냐면 - 와인 4병을 싸게 파는 프로모션을 보고 4병을 사서 U네 집에 쟁여두고 먹기도 하고, 1차부터 양식에 와인을 까거나 그게 아니라면 2차로 꼭 와인바를 가는 식이었다. (돈이 개많이 깨졌다.)
와인을 마시며 우리가 늘어놓는 이야기 중 절반은 영화, 드라마, 예능 이야기였다. 누가 방송국 사람들 아니랄까 봐. 어떤 작품이 어떻고 어떤 감독이 뭐가 좋고 어떤 연예인이 요즘 멋있고 …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보면 시간이 금방 금방 가서 어느 날은 U네 집에서 새벽까지 떠들다가 귀가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퇴근 후 영화 메이트기도 했다. 회사 복지로 나오는 영화 티켓으로 회사 근처 영화관의 영화를 예매해서 쪼르륵 앉아서 봤다. 그렇게 본 영화가 정말 많은데 <범죄도시3>,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브로커>… 이중에 같이 봐서 가장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라는 영화였다.
그날도 퇴근 후 6시 30분 영화 관람을 위해 저녁도 안 먹고 다 같이 뛰어갔다. 휘몰아치는 전개와 눈을 뗄 수 없는 화면 전환을 흥미롭게 보던 와중, 별안간 S가 옆에서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슬픈가…? 공감의 포인트를 찾아 헤매며 S를 이상한 눈으로 한 번 흘겨보고 다시금 영화에 집중했다. 여러 장면이 지나고 돌멩이가 나와서 말을 하는데, 이번엔 U가 울고 있더라. 아니 이 사람들… 우리 다 일명 MBTI ‘F’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나 감정적이라고? 하면서 또 한 번 흘겨보고 긴 러닝타임을 다시 함께 달리다가 - 마지막 장면에서 이번엔 나의 울음이 터졌다. 한참을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데 양옆에서 둘이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아 자존심 상해.
그렇게 우리는 벌건 눈을 하고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를 보면 항상 지하철 가는 길 내내 그리고 카톡으로도 영화에 대해 떠들곤 하는데 이 날은 그 정도의 시간으로는 영 부족할 것 같았다. 영화 후기 회포를 당장 길게 풀어야 될 것 같아서 당시 우리들의 아지트였던 삼각지의 한 와인바로 향했다. 안주도 와인도 비싼 곳이었지만, 사장님이 친절했고 음식이 맛있었고 강아지가 귀여웠고 공간이 따수운 곳이었다.
우리는 일주일 만에 또 본 사장님한테 반갑게 인사한 뒤늦은 저녁으로 파스타와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그리고는 영화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는데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너 그 장면에서 대체 왜 울었어?”를 묻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그 눈물의 장면들은 각자의 어떤 사연과 닿아있었다. 누구는 떠나지 않는 다정함이 필요했고, 누구는 좀 더 솔직한 엄마와의 대화가 필요했고, 누구는 순수한 마음을 원하고 있었다. 취기가 오를수록 우리의 사연은 구체를 더해갔다. 당신네들 이런 생각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었어, 와인과 함께 무언가 속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U도 S도 그리고 나도 여러 현생의 이유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멀어져서 예전처럼 영화를 같이 보지도, 와인을 마시지도 않지만 그때를 종종 추억한다. 입사 초반에 콘텐츠와 와인을 열심히 찾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때의 시간이 우리를 연결해 준다. 그리고 곧 U가 떠난다. 그전에 와인 한 잔 하면서 한 번 더 그때를 곱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