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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능 Dec 31. 2023

그리스 조각의 비밀

닮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다.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 앞에 서서 가이드분의 설명을 듣고 있을 때였다.


“루브르 박물관의 3대 작품이 뭔지 아시나요?”
가이드분께서 물었다.



예전에 들어본 것 같았지만 머릿속에 너무 많은 작품이 떠올랐다.

무엇을 뽑아야 하나 고민에 잠겨있는데 답을 알려주셨다.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그리고 <사모트라케의 니케>였다.

왼쪽부터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루브르 박물관 ( 출처 louvre.fr )


“3대 작품 중에 2개가 조각이네”
아내가 말했다.



“조각이라서는 아닌 것 같고 아마 고대 그리스 작품이라 그럴 거야.”

“그리스가 미술이 유명해? 난 수학자나 철학자가 떠오르긴 하는데.”

“여러 분야에서 회자되는 게 고대 그리스긴 하지. 미술사에서는 고전주의의 탄생이라 해야 할까?”

“고전주의?”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술을 고전주의라고 불러.”

“아… 비너스 상 같은 조각들?

"응."

"근데 사실 작품이 살짝 감흥이 없는 느낌이야”

“왜?”

“호텔이나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도 비슷한 조각은 많이 봤던 것 같아서...”

“음…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현대인의 눈에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거 아닐까?”




우리는 때때로 ‘클래식은 항상 옳다’와 같은 말을 쓴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의 트렌드와 달리, 고전은 그 영속성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무언가를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주의가 가지는 영속성이 무엇일까?


고전주의는 대략 2,700년 전에 생겨났다.

그 이후로 미술은 많은 변화를 거치며 현대에 이르렀다.

때때로 사실주의, 낭만주의 등 고전주의를 벗어난 화풍이 생겨나기도 했고, 가까운 과거에는 초현실주의나 야수주의와 같은 고전주의와는 관련 없는 미술이 생겨나기도 했다.

또 반대로 르네상스 시대나 신고전주의와 같이 사람들이 다시 고전주의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든 누군가는 고전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감상했으며,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의 전통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는 시대를 관통한다.


미술사에서 고전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출발한다.

기원전 7세기 무렵이다.

물론 처음부터 찬란하지는 않았다.

고대 그리스 문화가 꽃을 피우기 전에 암흑시대가 있었다.

Dipylon Krater ( 출처 thecollector.com )

암흑시대로 불리는 시절의 미술을 한 번 살펴보자.

그리스는 당연하게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

영원을 염원했던 이집트 미술을 떠올리며 위 작품을 감상해 보자.

위 그림은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광경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스 작품이지만 사후세계를 중시했던 이집트 묘비 벽화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을 단순화시킨 표현은 오히려 이집트보다 더 원시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마치 기하학의 도형들을 배열해 놓은 듯하다.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은 그리스인들이 '눈'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장기를 두는 아킬레스와 아이아스> 기원전 540년경 ( 출처 injurytime.kr )

위 그림은 아킬레스와 아이아스가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는데,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생략’ 혹은 ‘단축’의 개념이 생겨났다.

아킬레스의 왼손은 창을 잡고 있는 '일부' 만을 보여주며 두 영웅의 다리도 한쪽이 가려져있다.

또한, 장기 판은 아이아스의 창 뒤에 있으며 아킬레스의 창 또한 장기판에 가려져있다.

마치 인간의 눈에 많은 것들이 생략되어 보이듯 말이다.

이집트인들이 모든 것의 본질을 빼곡히 그려내는 데 열중했던 반면, 그리스 인들은 더 이상 그곳에 있었던 모든 것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사의 작별> 기원전 500년 경 ( 출처 네이버블로그 )

위 그림에서도 한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바로 ‘원근법에 의한 단축법’이다.

이는 전사의 발가락에서 보이는데, 발가락이 눈을 통해 본 것과 같이 동그란 원으로 단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망막에 맺힌 상을 그대로 옮겨 그렸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했다.



“어떻게 인간 중심의 문화가 피어났던 걸까?”
아내가 물었다.


“아마도 자유로움 아닐까?”

“자유로움?”

“이집트가 신에 위한 세상이었잖아? 계층적이고 수직적인… 뭔가 엄격하고 딱딱한 사회지. 근데 당시 그리스, 특히 아테네는 그 당시로는 획기적인 민주주의 사회였어.”

“맞네. 들어본 것 같다. 근데 그 시절에 민주주의가 어게 가능했지?”

“무역을 통해서 평민들이 부유해지기도 했고, 그리스가 작은 도시국가들이어서 가능했을 거야. 물리적으로 시민들이 직접 모여 결정을 내리는 게 가능했던 거지.”

“아하, 근데 그리스도 이집트처럼 신화가 있지 않아? 인간 중심의 문화라 볼 수 있는 건가?”

“물론 그리스도 신화가 있지. 하지만 이집트 신들과는 결이 많이 달라.”

(왼쪽) <딸들을 안고 있는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 (오른쪽)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왼쪽 그림을 보면, 아멘호테프 4세와 그의 아내 네페르티티가 딸을 안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오래도록 이어진 전통을 뒤흔든 '이단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백성들이 믿는 다양한 신들을 무시하며 '아톤'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며 숭배했다.

또, 아톤 신의 이름을 본떠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이라 했으며 그림 상단처럼 태양의 모습으로 신을 그리게 했다.

이제 오른쪽 그림을 살펴보자.

위대한 르네상스의 화가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이다.

비너스는 ‘거품에서 태어난 자’라는 뜻의 '아프로디테'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사랑과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뜨겁다가도 한순간에 거품처럼 사라지기도 하는 것이 사랑과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림은 비너스가 조개를 타고 키프로스 섬에 상륙하는 장면과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신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주목해 볼 점은 비너스를 인간과 같이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신도 인간과 같은 모습이며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처럼 신들도 인간의 감정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차이는 서로 다른 정치,문화적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집트에서는 자연재해를 신의 영역으로 보았으며, 이에 저항할 수 있다고 여겨진 파라오를 신으로 추앙했다.

그리고 강력했던 신권 정치는 무려 3,000년간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자연계 내부에서 자연재해를 탐구했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의 이치를 인간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그 결과 철학, 미술, 문학, 천문학, 수학 등 그리스만의 문화 발전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그리스 수학이 발전했구나”
아내가 말했다.



“유명한 수학자가 있어?”

“응. 생각나는 건 피타고라스, 에라토스테네스 정도?”

“피타고라스는 많이 들어봤고… 에라토스테네스는 누구지?”

“처음으로 지구의 둘레를 잰 사람이야”

“어떻게?”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원리 ( 출처 mma.org )


에라토스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장이었다.

그는 우연히 한 문헌에서 위 그림의 시에네 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바로, 하짓날 정오가 되면 햇빛이 우물 속까지 미친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땅에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우면 그림자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이 흥미로웠다.

이에 에라토스테네스는 같은 시각의 알렉산드리아를 관찰했다.

하지만 시에네와는 달리 막대기에 선명한 그림자가 생겼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그는 위 그림과 같이 지구의 둘레를 측정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 생긴 그림자의 각도가 7.2°였는데, 태양빛은 평행하므로 엇각인 지구 중심의 각도 또한 7.2°이며, 이를 통해 지구의 둘레를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7.2° : 360° = 925km : x km ( x = 지구의 둘레 )


에라토스테네스는 위와 같은 비례식을 통해 지구 둘레가 46,250km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이 계산값은 실제 둘레인 약 40,000km와는 다소 오차가 있다.

태양빛이 평행이라는 가정,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까지의 거리 측정 오류, 빛의 굴절에 의한 각도 측정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활용하여 자연계를 탐구했던 그들의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그리스인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이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의해 증명되기 무려 1,700년 전의 일이기 때문이다.


“신기하지?”
아내가 말했다.


“그러게. 지금 측정하라고 해도 난 못 할 것 같다”

“우리도 해보려면 할 수는 있지. 비례식을 이용하는 거니까”

“그런가? 근데 난 자기 말을 들으니까 그리스 사람들이 ‘비율’에 되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왜?”

자연과학에만 '비례식'이 이용된 건 아니거든


기원전 5세기에 '폴리클레이토스'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암흑시대가 끝나고 그리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며 그리스 문화가 꽃을 피우던 시절이다.

그는 균형과 원칙을 고수했던 조각가였으며, 후대 조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수학적 비율을 적극적으로 그의 예술에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The Canon of Polykleitos ( 출처 simplifiedartblog.wordpress.com )

그는 인체의 아름다움의 비법이 '수학'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 <Canon>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비율을 수학적으로 산출해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아름다움을 '계산'할 수 있는가?


먼저, 그는 위 그림과 같이 손의 비율을 찾는 데서 시작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3개의 손가락 마디, 그리고 손등의 길이를 일정한 비율로 커지도록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그 비율은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와 대각선의 길이의 비율인 1 : √2 였다.

그리고 손등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 팔꿈치에서 어깨까지의 길이 또한 같은 비율을 갖도록 했다.


폴리클레이토스가 여기에 √2라는 '무리수'를 사용한 점 또한 흥미로운 사실이다.

당시 수학계 최고의 권위자였던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원리가 '수'에 있다고 생각했으며, 정수와 두 정수의 비율로 표현가능한 '유리수'만이 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무리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었다.

무한하며 불규칙한 무리수로 자연계를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The Canon of Polykleitos ( 출처 simplifiedartblog.wordpress.com )


폴리클레이토스는 위 그림과 같이 얼굴과 전신에도 이상적인 비율을 찾으려 노력했다.

실제로 각 부위별 비율을 보면, 이질감이 있는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연구를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고전주의 작품들이 예술적 감각에만 의존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8등신 조각미남’은 정교한 수학이었다.


Doryphoros 대리석 복제품 ( 출처 ancientrome.ru )

위 사진이 폴리클레이토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Doryphoros’라는 작품이다.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이 그렇듯, 원본은 남아있지 않다.

‘Doryphoros’는 창을 무기로 하는 병사를 뜻하며, 'Canon'의 수학적 비율에 따라 다부진 근육과 전사의 강인함이 잘 묘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또 한 가지 비밀이 숨어있는데, 바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조각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포즈'를 뜻하는데, 정면을 향해 대칭적 자세로 서있는 딱딱한 인물 조각에서 한 단계 발전한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Canon>에서의 전신 그림과 실제 조각품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한쪽 다리를 구부러져 있어 무게 중심이 반대쪽 다리에 몰려있으며, 평행한 어깨에 비해 골반이 기울어져있다.

이를 통해 역동적인 느낌을 주며, 인간을 중시했던 그리스인들의 자연스러움을 잘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연구와 콘트라포스토 기법은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조화와 균형미의 기틀이 되었다.


“이거야 말로 진짜 신기하네?”
아내가 말했다.


“그치? 아무래도 여러 학문이 동시에 발전하다 보니 학문 사이의 연결도 자연스럽게 일어났던 것 같아”

“√2(≒1.414)를 이용한 것도 신기해. 예전에 '황금비(≒1.618)'가 여러 예술 작품에 적용되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잘못 알려진 상식들이지”

“그러게. 황금비는 이과생한테만 아름다운 건가? 황금비를 나타내는 식들이 예쁘긴 하거든”


황금비를 표현한 수식

"어때?"

아내가 물었다.


"뭔가 '비슷한 것'들이 계속 나오네"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지. 아름답지 않아?"

"자기 눈에 아름다우면 그런 거지. 아름다움에는 기준이 없잖아."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교과서에서 '도형의 닮음'이라는 주제를 배운 기억이 있다.

두 도형의 모양이 같다는 의미로, 크기를 조절하면 두 도형이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는 '합동'이 되는 조건을 말한다.

삼각형의 닮음 조건 ( 출처 mathmonks.com )


당시에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만 이 개념을 사용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초중고 12년의 수학 교육과정에서 '닮음이라는 단어만큼 '수'의 학문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닮다'라는 동사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수학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인에게 '수학'과 '예술'은 그 시작부터 무언가 많이 다른 '개별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리스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에게 기하학적 닮음이란, 그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는 오래도록 시대를 관통하며 지금의 고전주의에 이르렀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에 폴리클레이토스는 말한다.


"고전주의는 분야를 관통하기도 한다네."

그에게 '수학'과 '예술'은 그 출발선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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