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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능작가 Jan 07. 2024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는 가

세계의 절반, 헬레니즘


1506년,

로마의 어느 포도밭주인이 땅을 파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딱딱한 것이 삽에 부딪혔다.

흙을 다 파내자 좁은 입구가 보였고, 그는 그 안에서 예사롭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이웃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로마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궁정 예술가들을 불러 모아 발굴을 지시했다.

그들이 포도밭에 도착했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인 '미켈란젤로'였다.

그는 확신했다.

이 조각상은 천년 넘게 사라졌던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이라는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Laocoön – Francesco Primaticcio – 1543 ( 출처 romeonrome.com )



“끔찍하다.”
아내가 말했다.


“그치? 엄청난 고통과 절망의 감정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지지.”

“이게 근데 뭘 표현한 조각이야?”

“신들이 뱀을 보내서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을 죽이는 장면을 표현한 거야.”

“신화 속 이야기구나. 뭐 때문에 이렇게 잔인하게 죽였대?”

“음… 사건의 발단은 ‘사과’였어.”

“사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 이야기이지”

“가장 유명한 사과는 뉴턴의 사과랑 잡스의 사과 아닌가?”

“음… 물론 그것도 맞지. 근데 이번엔 '파리스의 사과' 이야기야.”




황금 사과를 둘러싸고 세 명의 여신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신 '아테나', 그리고 신들의 여신 '헤라'였다.

황금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있었다.

이 사과를 누구에게 줘야 한단 말인가?

제우스는 고민했다.

곤란해진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였던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긴다.


<The judgement of Paris>, Rubens ( 출처 nationalgallery.org.uk )


파리스 또한 사과를 손에 쥔 채 고민에 빠졌다.

헤라는 강력한 국가를, 아테나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아내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을 택했다.

황금 사과의 주인은 아프로디테였다.

약속대로 파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네'.

파리스는 스파르타에 방문했다가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고 트로이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비였다.

하루아침에 부인을 잃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는 트로이를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그리하여 발발한 전쟁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다.

전쟁의 결말도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리스 군이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성 앞에 남겨두고 군대를 물리자,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믿었다.

이때 이를 반대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트로이의 사제였던 라오콘이다.

그리스 군의 편에 섰던 신들은 거대한 뱀 두 마리를 보내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을 죽였다.

결국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 군이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헬레네를 스파르타로 데려온다.


“사랑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네”
아내가 말했다.


“맞아. 말 그대로 사랑과 전쟁이지. 또 재미있는 게 하나 있어."

"뭔데?"

"아까 발굴단에 미켈란젤로가 있었다고 했었잖아?"

"응."

"이 작품으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거든.”

"어떻게?"

Laocoon – Stefano Moderno, 1630 ( 출처 romeonrome.com )

“작품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라오콘의 오른팔이 유실된 채로 발견이 되었어. 당대 예술가들이 복원을 위해 모여서 팔이 어땠을지 추측하기 시작했지. 당시 미켈란젤로는 팔이 완전히 굽어있었을 것으로 예측했어.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예술가들은 팔이 뻗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대. 그래서 한 때는 위 그림처럼 팔이 뻗어있는 상태로 복원되기도 했어”

“근데 미켈란젤로 말대로 팔이 굽어 있는 게 맞았던 거야?”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 바티칸 박물관 ( 출처 ko.wikipedia.org )

“맞아. 20세기 고고학자가 처음 발견된 포도밭 근처에서 오른팔을 발견해 버린 거야. 미켈란젤로가 예상한 대로 굽어있는 모양으로.”

“오… 확실히 조금 더 역동적인 느낌이긴 하다. 어떻게든 뱀을 떼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

“그치? 역동적인 묘사가 헬레니즘 미술의 특징이기도 해. 아마 미켈란젤로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겠지”

“헬레니즘? 그리스 다음이 헬레니즘인가?”

“응 맞아. 고대 그리스는 여러 개의 작은 도시 국가였잖아? 그러다 강력한 군주가 나타나서 제국을 만들게 되거든.”

“누구?”

“알렉산드로스 대왕”


마케도니아 왕국은 고대 그리스의 북부의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어린 알렉산드로스 대왕> 기원전 300~150년, 대영박물관 ( 출처 britishmuseum.org )

그리고 위 조각의 주인공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마케도니아의 왕자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기지가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과외 선생님이 무려 고대 그리스의 3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였으니 말이다.

그러다 아버지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렇게 비교적 어린 나이인 20살에 아버지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전쟁 ( 출처 ko.wikipedia.org)

역사적으로 어린 왕의 등장이 혼란을 야기하듯,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버지가 물려준 강력한 군대와 함께 그리스 지역의 반란을 제압했다.

이후 위 그림과 같이 페르시아, 이집트, 중앙아시아까지의 정복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왕위에 오른 지 12년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거대한 제국이 탄생함에 따라 미술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기원전 120~100년, 나폴리 국립박물관 ( 출처 en.wikipedia.org )

위 그림은 화산재로 뒤덮였던 도시 폼페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화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페르시아 군대가 충돌했던 '이수스 전투'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극적인 구성과 역동적인 움직임, 또 인물 하나하나의 섬세한 표현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중앙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창에 찔린 병사가 있다.

말은 이미 쓰러져있고, 기괴한 자세로 창을 잡고 있는 자세와 표정에서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절망의 감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이를 보며 손을 뻗고 있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가 보인다.

다리우스 3세의 표정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드리워져 있으며, 옆에 타있는 부하는 전장에서 빠져나가기 바쁜 듯 말들 채찍질하고 있다.

반면, 왼편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자세와 표정에는 정복을 향한 결연한 의지가 나타난다.

화가는 강력하고 드라마틱했던 그 당시를 그대로 담아냈다.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그리스 너머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더 넓은 범위의 주제를 선택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표현 기법이 나타나게 되었다.

헬레니즘의 예술가들은 더 이상 초기 고전주의의 이상화된 인간 형태를 고수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두상>, 리시포스


“확실히 진짜 사람 같은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아내가 말했다.


“그치? 헬레니즘 시대부터 초상의 개념이 생겼다고 보면 돼. 로마 시대에 비하면 조금 보정된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 조각미남‘이랑 비교하면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맞아. 이러한 변화로 인해 헬레니즘만의 아름다움이 나타나. 루브르 박물관의 걸작들도 헬레니즘 황금기 시대의 작품들이야”

“아 비너스 상이랑 니케 상?

“응.”


(왼쪽) <밀로의 비너스>  (오른쪽)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상과 <사모트라케의 니케> 상은 헬레니즘 예술의 대표작들이다.

두 조각상은 일단 여성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초기 고전주의에서는 엄격한 비율과 균형을 중심으로 주로 남성의 신체만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헬레니즘 문화가 들어서며 여성 조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조각가들은 엄격한 법칙에 얽매이지 않았다.

비너스 상은 관능적인 몸의 곡선, 사실적인 옷의 질감과 표현, 대칭과 비대칭의 절묘한 조화를 느끼게 해준다.또, 절정을 이루는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주기도 한다.

니케 상 또한 헬레니즘 예술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이 조각상은 그 당시 기쁨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당찬 발걸음과 한 없이 펼쳐진 날개, 그리고 바람에 휘날리는 옷가지는 이전의 '절대법칙’으로는 보여줄 수 없던 역동성을 보여준다.


“시대를 알고 나니 작품이 다르게 느껴지네”
아내가 말했다.


“맞아. 많은 게 느껴질수록 작품이 더 재미있지.”

“헬레니즘 문화를 좀 더 '직관적'으로 느껴 볼만한 게 있을까?”

“음… 사실 우리가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할 때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헬레니즘을 느낄 수가 있어.

“어떻게?”

루브르 박물관의 전경


“이상하지 않아? 동양의 유물은 찾아보기도 힘든 곳인데 입구에서부터 주위를 둘러보면 동양인 천지잖아?”

“그렇긴 하지.”

무엇이 우리를 이곳에 이끌고 왔을까. 혹은 우리가 흔히 '예술작품'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서양예술이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헬레니즘'이 아닐까 싶어.”

“동서양을 아우르는 거라서?”

“맞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당시 세계의 절반을 정복했어. 불리는 이름도 다양했지. 본국 마케도니아에선 '군왕', 페르시아에서는 '샤한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 아시아에서는 '퀴리오스 타스 아시아스'.”

“바쁘셨겠는데…?”

“쉬는 날이 없었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와중에 적극적으로 했던 일이 동서 융합 정책이었어.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결혼하게 만들고 관리로 등용하기도 했지. 물론 이는 안정적인 통치를 위한 목적이 컸겠지만 덕분에 문화 교류도 빠르게 일어났어.”

“그렇게 고전주의가 자리매김한거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미술 교과서에 헬레니즘 예술이 등장할 거야. 그만큼 뿌리 깊게 자리매김한 거 아닐까?"

"그래서 그런가? 익숙한 듯 이국적인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아마 그게 동서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끌려 오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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