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대능 Dec 24. 2023

"스핑크스를 왜 만들었을까?"

뛰는 수학자 위에 나는 파라오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종종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나리자>, <나폴레옹의 대관식>, <밀로의 비너스> 등의 여러 걸작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가 루브르의 옛 성채를 보러 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거기에 있던 것은 뜻밖의 작품이었다.

Grand Sphinx de Tanis ( 출처 collections.louvre.fr )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타니스의 대스핑크스 상이었다.

정확한 제작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이집트의 여러 왕조의 이름을 흔적으로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상상 속의 동물인 스핑크스는 그리스어로 괴물이라는 뜻이며, 이집트의 신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집트인들은 스핑크스를 왜 만들었을까?”
아내가 물었다.



“신전이나 왕궁을 지키는 의미이지.”

“아 그건 아는데, 이집트인들이 굉장히 수학적이고 현실적이었거든. 근데 그 좋은 머리를 왜 스핑크스나 피라미드, 미라를 만드는 데 썼는지 잘 모르겠어. 되게 비현실적인 것들이잖아.”

“이집트인들이 그렇게 똑똑했어?”

“응. 이집트는 기하학의 기원이라고 해도 될 거야. 자기 기하학이 영어로 뭔지 알아?”

“ Geometry 아닌가?”

“맞아. 어원이 뭔지 알아?”

“그건 모르겠는데?”

“그리스어로 ‘Geometria’인데 ‘Geo’는 ‘땅’을 의미하고 ‘Metria’는 ‘재다’는 의미야. 쉽게 말해 땅을 잰다는 의미야.

“땅을 잰다?”

“나일강이 자주 범람해서 땅을 측량할 일이 많았는데, 이 때문에 기하학이 발전했다고 하더라고.”


아내의 말이 맞다.

이집트 파라오는 백성들에게 땅을 나누어주며 농사를 짓게 하고 세금을 거두었다.

세금이 땅의 크기에 비례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땅을 나누고 측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1Cubit(= 0.5236m) 간격으로 매듭지어진 밧줄을 사용해 땅의 넓이를 계산했다.


밧줄을 이용해 측량하는 이집트인 ( 출처 montessorianonymes.blogspot.com )

위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이집트에서는 비교적 정확하게 측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일찍이 다양한 도형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으며 특히 직각은 정교한 피라미드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측량 당시 모습 ( 출처 Pennsylvania Academy of Masonic Knowledge Facebook )


위 그림이 당시 현장을 보여준다.

밧줄을 잡고 측량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으며, 밧줄 중간중간 매듭도 잊지 않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나일강은 매년 7월 범람했다.

이집트인에게 범람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보호 조치를 취해야 했고, 강물이 영양소가 풍부한 부엽토, 부식토를 하류에 가득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집트인들은 시리우스 별을 이용했다.

태양과 시리우스 별이 지평선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날이 1년 중 딱 하루가 있었는데, 이 무렵 나일강이 범람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날을 기준으로 1년을 시작하는 태양력의 개념이 생겨났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범람과 측량을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하학이 발달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그리스인들에게 전해지게 되면서 학문적인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을 통해 기하학은 정점에 이르게 된다.


위 그림에서 또 한 가지 이집트 미술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계급에 따라 사람의 크기를 다르게 그렸다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땅을 측량하는 사람을 ‘줄을 당기는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대부분 높은 계급의 공무원들이었다.

크눕호텝 묘실의 벽면 ( 출처 researchgate.net )

위 그림에서도 비슷한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기원전 약 1900여 년 전 이집트의 고관 ‘크눕호텝’의 무덤 벽화의 일부이다.

마찬가지로 크눕호텝은 굉장히 크게 그려진 반면 주변 사람들은 작게 그려졌다.

윗 편의 상형문자를 통해 그가 생전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 알 수 있으며, 30마리의 물고기를 잡은 이야기,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살렸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과생으로서 되게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이집트인들이 원의 넓이 기록해 놓은 부분이 있거든? 근데 거의 정확해. 우리가 파이(π)라고 부르는 원주율을 그 시절에 알고 있었던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아?”

아내가 말했다.


“어떻게 계산한 건데?”

“이집트의 수학 체계를 정리한 린드 파피루스라는 기록이 있는데, ‘직경이 9인 원 모양 땅이 한 변의 길이가 8인 정사각형과 같은 넓이를 가진다’라고 적혀있는 부분이 있어. 계산해 보면 실제 원주율 값과 오차가 1%도 안 나는 거지.”


Exploring the Rhind Papyrus (출처 Miami University)


위 그림이 이집트인들이 원의 넓이를 계산했던 방법이다.

그들은 직경을 9등분한 뒤 하나를 뺀 길이의 제곱이 원의 넓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방정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S = {D-(1/9)D}^2 (S :원의 넓이, D :원의 지름)   


실제로 계산해 보면, 원주율을 이용했을 시 반지름이 4.5인 원의 넓이는 대략 63.6인데, 이집트 방식으로 계산 시 64로 계산된다.

정확한 값보다 이집트의 계산 값이 조금 더 크기에 세금을 조금 더 낸 피해자가 발생했을 수 있지만, 기원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근사치이다.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렇게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왜 비현실적인 피라미드나 미라 같은 걸 만들었냐는 거지?”
내가 말했다.


응.

“이집트인들은 미라나 피라미드를 만들면 그들의 지배자였던 파라오가 죽은 뒤 부활할 것이라 믿었거든"

진짜로 파라오가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이집트인들은 진짜 믿었을 거야.”

“왜?”

"파라오를 신으로 믿었으니까."


학창 시절 신석기 혁명에 배운 적이 있다.

농업이야 말로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변화였다는 내용이었다.

아직까지도 인류가 어떻게 농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농업을 시작으로 인류에게 자연은 더 이상 '이용의 대상'이 아닌 '개발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자연 개발이 순탄치는 않았다.

생각보다 농사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보다 여가 시간도 없었고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수확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기에 농사일을 하며 수렵채집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노하우를 가진 농부가 한 명 생겼다.

어떠한 땅을 선택할지, 어떠한 종자를 쓸지, 비료를 얼마나 줄지, 파종하는 방식 등의 노하우였다.

남들보다 빠르게 노하우를 터득한 농부는 식량을 비축할 수 있었다.

배불리 먹고도 식량이 남자, 미래를 대비해 창고에 식량을 쌓아두었다.

최초의 사유재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에 살던 아저씨가 밤늦게 농부를 찾아왔다.

“올해 농사가 망해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괜찮다면 식량을 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옆집 아저씨가 말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아저씨라 하는 수 없이 창고에 가서 농부의 식량을 조금 나누어주었다.

옆집 아저씨는 창고 식량을 보고 놀란 눈치다.

농부는 며칠 치 식량을 주는 대신 내일까지 장작과 마실 물을 좀 가져와달라고 했다.

명령처럼 들리는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옆집 아저씨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계급이 생겨났다.


소문이 났는지 많은 사람들이 농부를 찾아왔다.

덕분에 평판이 좋아졌고 다음 해에는 더 이상 직접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농사를 가르쳐주는 대신 일을 시키며 먹을 만큼만 나누어주면 되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농부의 식량은 창고에 계속 쌓여 갔다.


시간이 흘러 마을은 전체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인구가 많이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그러나 더 이상 농사를 지을 땅도 없었고 힘든 농사일에 불만을 품는 사람도 늘어났다.

농부는 이러다 사람들이 자신의 식량 창고에 눈독을 들이게 될까 불안했다.

그는 고민했다.

어느 늦은 밤, 농부는 마을 아저씨들을 모아놓고 얘기했다.

“여러분이 농사 일로 힘들어해서 마음이 편치 않아요.
옆 마을에 가서 땅을 빼앗고 농사도 그들에게 시킵시다”
농부가 말했다.


아저씨들이 환호했다.

다음 날 농부는 모든 마을 아저씨들을 이끌고 옆 마을에 찾아갔다.

처음엔 거부했지만, 무기를 들이대니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렸다.

이제 옆집 아저씨들도 더 이상 직접 농사일을 하지 않으며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옆 마을 사람들도 큰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똑같이 농사일을 가르쳐주었고 그들도 먹을 만큼의 식량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농부의 마을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제 마을 안에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지며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며 농부를 찾아왔고 골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아들이 대신해서 마을을 이끌기를 바랐지만 아직 너무 어렸다.

옆집에 살던 아저씨들은 전쟁을 치르며 너무 호전적으로 변해서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농부는 예전처럼 마을 사람들을 전부 모아놓고 얘기했다.


“여러분…
사실 저는 ‘신’입니다”




“신기하네.”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아는 4대 문명이 따뜻한 기후와 큰 강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모두 신권 정치였다는 공통점도 있어.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도 환인과 환웅이 등장하잖아? 우연이라고 생각해?”

“신이 있어야만 했던 거구나.”

“맞아. 필연적이라고 봐야지. 자기는 그 당시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게 뭐였을 것 같아?”

“글쎄.”

“자연재해였어. 그러다 보니 이를 피하게 해 줄 수 있는 인물이 권위를 갖게 되었고 이집트에선 그 인물이 파라오였던 거지.”

“결국 파라오를 위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를 만드는 게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는 뜻인 거지?”

“맞아. 자신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거야.”

“뛰는 수학자 위에 나는 파라오가 있었구나...”

이전 03화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