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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능 Dec 24. 2023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

네바문의 정원과 골든 레코드

“도대체 어디서 이런 걸 다 가져온 거야?
루브르 박물관의 고대 이집트관을 둘러보던 아내가 물었다.



“나폴레옹”

<Bonaparte Before the Sphinx> Jean-Léon Gérôme (1886)

1798년 나폴레옹은 영원의 숙적 영국을 견제하고자 이집트 원정길에 오른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인도였다.

영국이 인도와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으며 영국 함대의 군사력을 키워왔는데, 이대로 영국이 더 막강해지게 놔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에 의해 프랑스의 모든 대서양 군사항구가 봉쇄되어 있었다.

결국 나폴레옹은 지금의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에 진격할 계획을 세운다.

< Battle of the Pyramids, July 21, 1798>  Antoine Jean Gros (1810)

영국의 함대를 피한 프랑스군은 무사히 이집트에 상륙하여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

그리고 18일 뒤, 위 그림의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군에게 승리하며 카이로에 입성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군대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160여 명의 학자와 예술가들이 동행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동행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폴레옹은 전쟁의 신이었지만 예술에는 감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학자들이 원정에 나섰던 것은 당시 제국주의적 사고관 아래 유물 수집이 자국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엄청난 양의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프랑스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그 유물들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관'에서 말이다.

고대 이집트 관은 각종 조각들과 파피루스, 무덤 벽화들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고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 건가. 왜 이렇게 분위기가 음산하지?
파라오의 저주 같은 것도 들어본 것 같은데...
밤에 혼자 오면 진짜 무섭겠다”
아내가 말했다.


“그치? 왠지 밤에 오면 영화처럼 저 조각들도 살아 움직일 것 같고”

“맞아”

“근데 이집트인들이 작품을 만든 이유가 바로 그거야. 살아 움직이라는 거”

“응???”

“이집트 미술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영원’이라고 할 수 있어.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더라도 그와 닮은 것을 보존하면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 이집트에서 조각가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자(He who keeps alive)’라고 부르기도 했거든”


고대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는 상당히 정교하다.

영혼은 렌(Ren), 바(Ba), 카(Ka), 셰우트(Sheut), 입(Ib)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으며, 인간의 육신인 하(Ha), 다른 영혼인 아크후(Aakhu), 카이부트(Khaibut), 카트(Khat)가 있다고 알려진다.

이는 미라와도 연관이 있는데 그들은 영혼인 카(Ka)는 사후세계로 가지만, 시간이 지나 부활할 때 필요한 육신인 하(Ha)가 온전해야 완전히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미라를 제작하는 과정 또한 상당히 복잡했으며, 이때 가장 중요한 입(Ib), 즉 심장만은 시신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사후세계에서 심판을 받을 때 심장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후세계가 발달한 이유가 무엇일까?


오시리스 신화에 힌트가 있다.

오시리스는 동생 세트에게 14토막이 나며 죽음에 이르지만, 여동생과 아내가 조각을 찾아 되살려주었다는 신화이다.

하지만 신화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더구나 고대 이집트는 다신교였다.


사실 사후세계는 당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들에게 아주 익숙하며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삶'.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여 떠밀려온 토양 위에 생명의 땅이 만들어지는 것을 매년 목격했고, 이러한 생명의 근원을 '태양'에서 찾았다.

그들이 본 '태양'은 어땠을까?


태양은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밤이 되면 사라졌다가 아침에 다시 떠오른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말이다.


그들이 작열하는 태양을 보며 낮을 현생으로, 밤을 '사후세계'로 여기며 영원과 불멸을 사유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사후세계관이 미술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람세스 2세 흉상 <Younger Memnon> ( 출처 britishmuseum.org )


위 조각은 람세스 2세의 조각이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 프랑스 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왼쪽 가슴에 뚫린 구멍에서 당시 이 커다란 조각을 옮기려던 약탈자의 흔적이 그대로 보여진다.

현재에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데, 이집트 원정에 실패한 프랑스 군대의 무사 귀환을 조건으로 영국군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집트인들의 바람대로 람세스 2세의 영혼이 조각에 깃들어져 있다면 이러한 수모를 무기력하게 모두 지켜봤을 것이다.

여기에 영감을 받은 영국의 시인 ‘퍼시 셀리’는 ‘오지만디아스’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며 오지만디아스(람세스 2세)처럼 강력한 지배자도 언젠가는 완전히 잊혀진다고 말한다.


람세스 2세그러했다.

그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파라오 중 한 명이다.

현재의 리비아,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으며, 대규모의 토목공사를 곳곳에서 진행하며 이집트 전역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는 강력한 지배자였으며 사후세계에서도 이러한 영광이 이어지길 바랐다.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조각가들은 단단한 화강암으로 왕의 흉상을 조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무덤 속에 넣어 영혼이 그 형상을 통해 영원히 살아가게 도와주도록 했다.

아무런 변화 없는 표정, 다부진 몸, 네메스(Nemes) 등의 딱딱한 질감이 주는 인상은 이집트인들의 영원에 대한 염원을 느끼게 해 준다.


이처럼 그들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것, 즉 본질에 집중했다.


이집트인들이 이러한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정면성의 원리’이다.


습지에서의 새 사냥 ( 출처 egypt-museum.com )
"정면성의 원리가 뭐야?"
아내가 물었다.


"모든 것을 가장 특징적인 각도에서 그려내는 거야."


위 그림은 이집트 서기관이었던 네바문이(Nebamun)이 습지에서 새를 사냥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인 네바문을 보면 신체 부위의 각도가 다 다르게 보인다.

머리는 측면, 눈은 정면, 몸통은 정면, 팔과 다리는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각종 동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실제 위치나 방향, 동작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고 그저 그들이 무엇이었는 지를 친절히 설명한다.

네바문의 정원 ( 출처 britishmuseum.org )


‘네바문의 정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정면성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는 네바문의 정원과 수영장을 묘사했으며, 대추야자, 플라타너스 나무, 물고기와 새 등 마찬가지로 그들의 본질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각도로 그려져 있다.


"골든 레코드가 생각나네"
아내가 말했다.



"골든 레코드가 뭐지?"

골든 레코드 ( 출처 namu.wiki )

닐 암스트롱이 1969년 달 착륙에 성공하자,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행성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7년 마침내 역사적인 우주선 2대가 지구를 떠난다.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이다.

두 탐사선은 수많은 관측 임무를 수행하며 과학계에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었다.


당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제안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골든 레코드'를 보이저에 실어 보내는 것이었다.

'The Sound of Earth'라는 제목의 음반이며, 외계인들에게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이다.

골든 디스크에는 자연적인 소리, 음악, 다양한 언어의 인사말 등이 녹음되어 있으며,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또한 녹음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의 골든 레코드가 네바문의 정원이 아닐까 싶어.
'우리는 이랬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느낌이랄까"
아내가 말했다.


"이집트인의 골든 레코드... 뭔가 비슷하다."

"그치? '네바문의 정원' 그림도 골든 레코드에 담겼으면 진짜로 완벽했을 텐데."

"그러게. 영원히 떠도는 탐사선 안의 영원을 위한 미술인 셈이잖아?"

"그렇지."


두 탐사선은 46년이 지난 지금 태양계를 완전히 벗어나 아득히 먼 우주에서 노년의 여행을 이어가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지구와 통신하고 있다.

그리고 수년 안에 수명이 다해 인간의 손에서 완전히 떠나게 될 예정이다.




이집트 미술에도 한계점은 있다.

그들이 영원과 안정을 추구했던 만큼 인물의 개성과 생동감이 사라진 것이다.

다시 한번 네바문의 정원을 감상해 보자.

네바문의 정원 ( 출처 britishmuseum.org )

이제 작품을 이해하며 그 가치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네바문의 정원을 '아름답게' 표현했다기보다 네바문의 정원 '관람 안내도'와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상형문자를 해석하지 않는 이상 작품이 누구를 그린 것인지도 알 수 없으며, 이집트 미술이 표현하는 인간은 모두 같은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다행인 것은, 정면성의 원리는 지배계층을 표현할 때에만 엄격하게 적용될 뿐 피지배계층을 묘사하는 방법은 달랐다는 것이다.

Musicians and dancers on fresco at Tomb of Nebamun ( 출처 commons.wikimedia.org )


위 그림의 춤추는 여인들을 한 번 살펴보자.

몸통과 팔다리 모두 정면성의 원리에 의해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춤을 추는 모습에서는 그간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이 느껴지며 마치 웃고 있는 듯한 표정도 보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말 그대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세, 정면에서 보이는 발바닥 등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이집트인들이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는 형태로 즐거움을 표현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래야만 했던 것뿐이다.

지배자의 권력은 '영원'해야 했지만, 피지배자들은 그저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존재였다.

'영원'의 반대말이 '순간'이었던 것일까?

피지배계층의 '순간'들은 살아 숨 쉬듯 표현되었다.


실제로 이집트에서 화가가 되는 과정은 험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미술가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법칙들을 배워야 했는데, 남자의 피부는 여자의 피부보다 검게 칠해야 하며 상형문자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돌에 새길 줄도 알아야 했다.

안타깝지만 화가는 지배층을 위해 존재했으며, 화가가 독립적인 예술가로서 작품을 만들기에는 너무나도 먼 옛날이었다.

그림에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이름이 등장하려면 14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이집트의 미술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미술은 그 역사를 온전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는 무려 3,000년간 지속된 역사이며, 이집트 신왕국 사람들이 고왕국 시절의 피라미드를 보며 '고대 유물'이라 생각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미술은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다.

작품의 표면 너머에는 ‘화가’가 있고, 화가가 살아갔던 ‘시대’가 있고, 시대가 흘러 쌓여버린 ‘역사’가 있다.

우리가 이집트 미술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이 무구한 ‘역사’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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