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받침

by 김진영

참 오랜 시간 뚝배기를 받아줬다. 끓어오르는 열을 참고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난 시간이 흐를수록 생채기만 늘어갔다. 검은색 내 몸에 하얗게 긁힌 자국이 언제 이렇게 많아졌는지 이젠 헤아릴 수도 없다. 펄펄 끓는 국물이 흘러도 앗! 뜨거 말 못 했고 차차 식어가는 열기가 아쉬워도 묵묵히 가만히 있었던 게 바로 나다. 그래도 가은이 할머니 식당에 있을 때만 해도 난 팽팽했다. 흠집 하나 없이 손님들 상 위에 올라갈 때는 날마다 청국장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만 맡아도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곳 어두운 찬장에 놓여 언제 나를 찾나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이 집에 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또각또각 채소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된장찌개 냄새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바깥 구경을 할 수 있겠다. 잠시 후 가은 엄마 손이 불쑥 내가 있는 캄캄한 이곳에 들어오더니 날 데리고 나갔다. 난 한쪽에 조용히 놓여 가은 엄마가 된장찌개를 다 끓일 때까지 기다렸다. 사실 저 뜨거운 뚝배기가 다른 받침 위에 올라갈 수 있다면 난 얼마든지 내 자리를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뚝배기를 받쳐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천으로 만든 받침은 뚝배기가 올라가니 쩍 하니 들러붙어 버렸다. 그때 뚝배기도 그렇게 들러붙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사기 받침은 어느 정도 견디는가 싶더니 이내 뚝배기가 쩍 갈라놓고 말았다. 그러니 덜커덕 소리를 내며 올라오는 뚝배기를 여전히 받쳐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만 품고 있는 뚝배기가 오늘따라 얄미웠다.

끓어오르는 뚝배기를 받쳐준 나를 양손에 잡고 가던 가은 엄마가 멈칫했다. 가은 아빠가 바닥에 있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치우고 있었다. 전에 순두부를 끓였던 날 나왔을 때도 저러고 있었는데 오늘도 저러고 있다. 아까 찌개를 끓이다가 가은 엄마가 얼핏 아빠를 쳐다봤었다. 난 저러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상 차리는 걸 도와주는 게 더 낫겠다 생각했다. 고양이 자세로 바닥을 닦고 있는 아빠 엉덩이가 오늘따라 민망해 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지금 모습을 보니 가은 엄마가 왜 스탠드 물걸레 청소기를 사줬는지 알 것 같다. 그것도 지금은 한쪽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지만 말이다.

“가은 아빠, 그것 좀 치워요.”

가은 엄마가 치우라는 건 사기로 만든 냄비 받침이다. 된장찌개가 끓고 있다는 걸 안 가은 아빠는 미리 받침을 가져다 놓았다. 엄청나게 뜨거운 뚝배기를 내가 받치고 가는데 왜 받침을 또 갖다 놨는지 정말 속상했다. 아무리 가은이 고모가 사준 거라 해도 말이다. 가은 아빠가 사기 받침을 치우자 엄마는 식탁 가운데에 뚝배기를 받치고 있는 날 떡 하니 올려놓았다.

“애들아, 밥 먹자!”

가은이와 나은이가 엄마 목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았다. 펄펄 끓는 된장찌개 냄새가 가은이 콧속으로도 들어갔다. 나은이는 잘도 먹는 된장찌개지만 냄새조차 싫었던 가은이는 손으로 날 살짝 밀었다. 난 밀리는 게 싫었다. 그래서 버텼다.

“조심해, 뜨거워!”

하마터면 뜨거운 국물이 넘쳐 가은이 손등을 덮칠 뻔했다. 가은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바라봤다. 가은이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가은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조금 있으면 사기 받침이 쓰레기봉투에 들어갈 거라는 알듯이 말이다. 난 얼른 사기 받침한테 잘 가라고, 그동안 정말 잘 버텼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갈라져서 못 써. 버려요.”

“이리 줘봐.”

아빠는 엄마한테 받은 냄비 받침을 앞, 뒤를 돌려가며 한참 동안 살폈다.

“못 쓴다고요.”

“알았어.”

아빠는 곧바로 베란다에 냄비 받침을 버리러 갔다. 그리고 다시 식탁에 앉는 아빠의 무릎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온종일 집에만 있는 가은 아빠 바지 무릎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난 가은 엄마가 나처럼 지금 아빠 무릎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사이 가은이는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뜬 다음 입으로 후 후 불었다. 가은이 안경이 김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서현이가.”

그나마 손에 쥐었던 숟가락도 다시 내려놓고 가은이가 말했다. 아빠의 숟가락이 멈췄다. 난 아빠가 가은이 숟가락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밥 먼저 먹고.”

아빠가 뭐라 해도 뜨거운 밥이 정말 싫은 가은이는 숟가락을 잡지 않았다. 밥이 식는 동안 얘기를 좀 하면 어떠냐는 게 가은이 생각이다. 옆에 앉은 나은이는 밥이 뜨겁다는 걸 알아서인지 숟가락으로 아주 조금씩 떠서 먹고 있었다. 나은이의 오종종한 입이 커다란 숟가락들 사이에 있는 찻숟가락처럼 앙증맞아 보였다.

“서현이가 왜?”

엄마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쁜 쪽으로 흘러가게 놔두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는 좀처럼 입에 들어가지 않는 가은이 숟가락을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 속이 지금 뚝배기마냥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은이는 아빠가 쳐다보고 있는 게 언니 숟가락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열심히 입에 밥을 넣었다.

“서현이 아빠가 건물을 지었는데 VR 무료티켓을 준대.”

“정말? 언니는 좋겠다.”

전부터 들었는데 서현이는 늘 아빠 자랑을 늘어놓는 가은이 친구다. 얼마 전 건물을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가은 아빠 표정이 안 좋았는데 지금도 표정이 좋지만은 않다.

“밥부터 먹고.”

아빠가 평상시보다 낮은 목소리를 냈다. 요즘 회사에도 안 가고 집에만 있는 아빠는 전과 다르게 자꾸만 타올랐다. 한 번 타오르면 오래갔다. 엄마는 제발 한 숟가락이라도 먹으라고 가은이가 좋아하는 햄을 집어 가은이 밥그릇에 올려주었다. 그러자 나은이가 쳐다봤다. 엄마는 나은이 밥그릇에도 똑같이 올려주었다. 그때 나은이 얼굴이 벌겋게 된 걸 눈치챈 건 엄마였다.

“나은아, 왜 그래?”

언니가 발로 찼어.

“아니야, 나은이가 먼저 찼어.”

“아니라고.”

나은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식탁 밑에서 발들이 왔다 갔다 했나 본데 볼 수 없었으니 누구의 얘기가 맞는지 알 수 없었다.

“제발, 그만하자!”

아빠의 쐐기를 박는 한마디에 금방 사그라지듯 조용해진 아이들이 난 신기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묵묵히 밥만 먹고 있는 엄마도 이해할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갈등이 생겼으니 어떻게든 풀어야 맞지 그걸 누르기만 한다면 다음에는 안 터지냐 말이다.

“가은 아빠, 주말에 바지 사러 가요.”

“누구 거? 애들 거?”

“아니 당신 거. 무릎 나온 추리닝만 입지 말고!”

“됐어. 아직 멀쩡해.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니고. 이제 조금 있으면 더워져서 반바지 입어야 하는데 뭘.”

“당신이 옷을 사야지 나도 옷을 사지.”

가은이 엄마 목소리가 오랜만에 높았다. 그래서 보니 집에서 입는 옷이라지만 가은 엄마가 입은 바지를 난 몇 년 전부터 쭉 봐 온 것 같다. 갑자기 찬바람이 불어와 식탁 위를 한 바퀴 불더니 사라졌다. 가은이는 그때서야 밥이 어느 정도 식었는지 알아보려고 입술에 밥숟가락을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완전히 식은 밥숟가락이 드디어 가은이 입속으로 들어갔을 때 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띡 띡 띡- 띡 띡 띡 띡.’

“할머니다!”

나은이가 재빨리 일어났다. 가은이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밥 먹고 있네. 내가 조금 일찍 올걸. 서둘렀는데도 이 시간이네.”

옆 동에 사는 가은이 외할머니가 작은 냄비를 들고 있었다. 할머니 손등의 거뭇한 자국들을 난 알고 있다. 나처럼 뜨거운 열을 참고 견디느라 생긴 흔적이라는 걸 말이다.

“식사하셨어요?”

“어, 난 먹었지. 그러지 말고 뭐 좀 깔아 봐. 그냥 놓기가 그렇네.”

아빠가 두리번거리더니 얼른 식탁 한쪽 구석에 놓인 책을 깔았다. 하필 그 책은 엄마가 요즘 빠져 있는 책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걸 깔면 어떡해?”

엄마가 책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엄마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할머니는 맛있게 먹으라는 말만 하고 가만히 식탁에 냄비를 올려놓고 가셨다. 난 알고 있었다. 냄비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는 생선조림 냄새였다. 가은이 외할머니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말이다.

“잘 먹었습니다!”

언제 다 비웠는지 가은이가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일어났다. 그런 언니를 보고 나은이는 얼른 맨밥을 가득 입 속에 넣었다. 가은 아빠는 오늘도 반찬이며 밥을 쓰나미가 쓸고 간 듯 다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게 잘 먹었네.”

버릇처럼 날마다 하는 말을 하고 아빠가 일어났다. 겨우 밥그릇을 비운 나은이도 언니처럼 그릇을 들고일어났다. 이제 엄마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난 끝까지 버티고 있었다. 어느새 뚝배기의 열은 식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