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소녀

by 김진영

인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인어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지금껏 눈물을 흘린 인어는 없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인어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인어들은 입을 통해 나오는 노래 선율에 온 감정을 싣는다. 그래서 인어의 노래는 특별하다. 인어 외에 우리의 노래를 온전히 이해하는 존재는 아마 없을 거다. 누구도 그 소리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물고기인 인어의 몸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난 지금 바다 마녀를 찾아가는 길이다.

선상에 올라가려면 난 꼭 다리가 있어야 한다.

가는 길마다 폴립의 촉수가 날 노려보고 있다. 하지만 폴립의 위협 따위는 날 막을 수 없다. 그날을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릴 적 난 바다 위에서 들려온 소리에 온 몸이 마비된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달의 그림자가 물 위에 아른거리며 흔들릴 때 난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하지만 일찍 엄마를 여읜 나를 키워주는 할머니와 언니들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물속과 바깥세상은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물속 인어가 바다 밖에서 살 수 없듯 물 밖 소리는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난 열다섯 살이 되기를 기다렸다. 열다섯 살이 되면 그토록 궁금했던 소리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편으론 그날 이후 다시 들을 수 없었던 소리를 무작정 쫒는다는 게 어쩜 너무 터무니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덧 난 열다섯 살이 되었고 물 밖으로 난생처음 고개를 내밀었다. 작은 바위 위에 가까스로 올라가 걸터앉았을 뿐인데 갑자기 숨쉬기가 힘들었다. 바깥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태양이 온몸을 태워버릴 듯 내리쬐고 비늘이 말라 가는 걸 본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풍덩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왜 언니들이 흐리고 비가 오는 날 또는 새벽이나 밤에 물 밖으로 나가는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밤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바다 마녀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컴컴한 저 동굴 속에는 바다 마녀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저 어둠의 소용돌이를 보고 있자니 몸서리가 쳐졌다. 그때 머릿속으로 노랫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오지 않았다면 난 아마 뒤돌아 왔을지도 모른다.

“마녀님, 전 다리를 갖고 싶습니다.”

“다리가 왜 필요한 거지?”

처음 마녀를 봤을 때 난 놀랐다. 마녀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하다 못해 푸근함까지 느껴지는 얼굴이었으니까 말이다.

“꼭 바깥세상에 나가 해야 할 게 있어요.”

“네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네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나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나도 너에게 마법을 줄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 마녀의 얼굴이 변했다. 세상 야비한 얼굴은 지금 저 얼굴을 말하는 것이라 하듯 마녀의 얼굴은 야비함으로 물들고 있었다.

“전 어릴 적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땐 열다섯 살도 되지 않았고 하찮기 그지없었기에 그 소리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소리를 또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선상에서 들려왔습니다. 깜깜한 밤 들려왔던 그 소리는 어릴 적 꼭 한번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습니다.”

“어떻게 넌 그 소리가 같은 소리라고 확신을 하지?”

“그 소리의 선율은 밤의 공기를 타고 파도에 실려 나아갔습니다. 그 소리는 바다를 아우르는 소리였습니다. 전 그 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소리와 네가 다리가 있어야 하는 게 무슨 상관인 거지?”

순간 마녀의 얼굴은 세상 모든 게 궁금한 어린아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건 제가 달빛이 가득했던 밤 두 번째로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보았던 것 때문입니다.”


늦은 밤 선상 위에는 작은 불빛 하나 없이 달빛만 어스름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 여인이 먼바다를 내다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분명 어릴 때 들었던 그 선율과 같은 소리였기에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선실에서 나와 여인 옆에 섰다. 그들을 먼발치에서 봤지만 연인 또는 부부처럼 보였다.

“이제 곧 그대의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몰려오겠구려. 세상 어떤 사람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을 거요. 그게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보다 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겠군요.”

“설마, 그럴 리가요.”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만 말과 마음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입으로 나오는 감정의 미세한 울림을 우리 인어들은 누구보다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저 여인이 왜 저렇게 겉과 다른 마음을 가진 남자에게 끌리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제 딱 사흘이 남았소. 당신을 처음 만난 이곳에서 당신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선상 음악회를 열 수 있다니 난 정말 행복하오.”

‘선상 음악회?’

한번 들어온 말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선상 음악회에 가야 해요!”

마녀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네 목소리를 내놓아라!”

“목소리를요? 그건 안 됩니다. 제가 다리를 갖고 싶은 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도 아니고 우리와는 달리 영원한 인간의 영혼이 탐나서도 아닙니다. 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도 물러서지 않는 당당함으로 음악회에 참석하고 싶어요.”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네 목소리뿐이다.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이 바닷속에 울려 퍼지는 네 목소리는 누구도 탐내지 않을 수 없으니까.”

“목소리는 안 됩니다. 목소리만 안 가져가신다면 전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그래, 그럼 네 목숨을 내놓아라!”

마녀의 얼굴은 사악하게 변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서 난 얼핏 티끌만큼의 연민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인어로 살아온 날들을.


이제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난 잘 살아왔다. 언제나 난 한 치 앞의 나의 미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래는 늘 내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현실이 되었다. 이제 목숨을 내놓고 다리를 얻어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라면 난 당연히 망설여야겠지만 그건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것이니 아직은 현실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지금 결정을 내린다. 목숨을 내놓겠다고.

“좋아요. 목숨을 내놓겠어요.”

“그럼 넌 딱 하루만 다리를 갖고 다음날은 다리뿐 아니라 네 목숨도 잃게 되는 것이다. 인어가 목숨을 잃는다는 건 곧 물거품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네가 지금의 목소리를 잃지 않겠다고 한다면 나도 네 몸에서 나오는 노래의 선율만 허락하겠다. 일체 다른 목소리는 낼 수 없다. 당연히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도 없다. 그래도 목숨을 내놓고 다리를 갖겠느냐?”

“네.”

“참으로 단호하구나. 이 바닷속에 너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를 할 수 있는 인어는 없는데 왜 만족하지 못하는지, 네가 물거품으로 사라지면 그 아름다운 노래가 더는 울려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지 안타깝고 안타깝구나.”

세상 실의에 빠진 얼굴로 변한 마녀가 몸속 깊은 곳에 숨겨둔 유리병을 나에게 주었다. 유리병에 담긴 저 작은 양의 투명한 액체가 나에게 다리를 갖게 하고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게 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바다 마녀의 은신처를 헤엄쳐 나오는데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내 머리카락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따라왔다. 마치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라고 조잘대는 것 같았다.


마법은 절대 달콤하지 않았다. 그 많은 비늘 하나, 하나에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얼마나 고통스럽든지 다리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는 내가 무얼 하기 위해 이 고통과 싸우고 있었는지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한 고통은 없는 법. 시간이 흐르자 고통은 사라지고 다리가 자리를 잡았다. 다리를 가진 난 태양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했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조명삼아 음악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배에 오르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커다란 배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갑판 위에는 사방에서 보아도 바로 도드라지게 보이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곳에 올라가기 위해 딛어야 하는 계단에는 수많은 조개 장식이 있어 화려함을 더해줬다. 조금 특별해 보이는 좌석에 그날 밤 그토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 여인과 남자가 앉아 있었다.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우아하면서도 강렬했다. 눈은 그 여인을 쫒으면서 자리에 앉는데 갈매기 한 마리가 아주 가깝게 내 머리 위를 날아가 내 시선을 옮겨놓았다. 바다 위 하늘을 보았다. 머리 위에 또 다른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난 이토록 커다랗고 푸근한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금방이라도 빠져들 것만 같은 하늘바다를 보며 딱 한번 내일 물거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였다. 선실 쪽에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얼핏 봤지만 난 분명 바다마녀임을 알았다.

‘나를 감시하러 왔구나. 나의 최후를 보고 싶어 왔구나!’

순간 바다마녀도 나와의 일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음악회를 즐기러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가득 차고 음악회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리자 배 위의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무희들이 춤을 추고 악기들이 저마다 소리를 뽐내자 모두 기분 좋게 흥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음악회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악기가 멈추고 무희들의 춤사위가 멈추자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바로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여인이었다. 여인의 하얀 드레스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너무도 파란 바다에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을 보자 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여인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그날 밤 나를 매혹시키고 여태껏 내가 찾아왔던 그 목소리였다.


여인이 노래하는 동안 난 처음 저 노랫소리를 들었던 어릴 때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어느덧 난 열다섯 살이 되었다. 바다 마녀를 찾아가 마법의 약을 먹고 비늘 하나, 하나에 찾아온 고통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모든 게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 어디선가 우레와 같은 소리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박수 소리였다. 사람들은 끝맺음을 모르는 것처럼 박수를 쳤다. 그때 내 몸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난 무대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다리 없이 살아왔던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다리에는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계단을 오르려 하자 누군가가 내 팔을 잡으며 나를 막았다. 어느 사이 나를 막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난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려해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을 믿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나의 행동으로 어수선한 상황이 되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번에는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목소리 하나 내지 못 하는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 사람들은 지켜봤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하지요. 저 연약한 소녀가 누구를 해치려는 마음으로 저러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다마녀였다. 사람들은 바다마녀의 말을 듣고 나를 놓아주었다. 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처음 물밖에 나와 크게 쉼 호흡을 했던 때처럼 숨을 가다듬고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소리를 내었다. 소리가 나왔다. 내 몸에서 노래의 선율이 나오고 있었다. 딱 한 번이고 마지막일 노래가.


노래는 나였다. 어릴 때부터 나에겐 엄마가 없었다.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스스로 당당해야 한다고 늘 부르짖었고 혹이나 날 돌봐주는 할머니나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티조차 내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내 가슴은 멍들고 있었다. 꿈속에라도 엄마가 나타나 내 가슴의 멍을 어루만져주기를 기다리며 살아왔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모든 감정이 소리를 통해 몸 밖으로 나왔다. 노래 선율에 실려 감정을 모두 쏟아냈을 때 난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는 걸 알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눈물인지조차 몰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으니까. 조개 속 진주와 같은 눈물이 흘러내릴 때 사람들은 모두 마비가 된 듯 나를 보고 내 노래를 듣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 무대를 내려올 때 난 사람들도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노래는 세상을 아우르고 있었다.

“네가 이겼다.”

바다마녀였다.

“무슨 얘기죠?”

“눈물을 흘린 인어는 더는 인어가 아니다. 넌 지금껏 눈물을 흘린 인어는 없다고 알고 있지? 그때 넌 너무 어렸으니까. 저기 저 여인을 보아라!”

바다마녀가 가리킨 곳에는 이곳에 잠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너보다 먼저 눈물을 흘렸고 더는 인어의 삶을 살지 않은 저 여인이 보이느냐? 너랑 몹시도 빼닮은 저 여인, 인어에서 인간이 된 저 여인, 바로 네 엄마!”

바다마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토록 그립고 기억이 희미해 더 그리웠던 그녀를 만나기 위해 걸었다.

왜 어린 나를 두고 떠나 이렇게 사는지 따지기 위해 다가갔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왔는지 알려주기 위해 난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태양은 이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차츰차츰 수평선 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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