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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수집가 Aug 03. 2022

맺음식

우리는 해마다 씨앗을 심고 열매를 맺는다.

저녁 밥을 막 먹으려고 밥 한숟가락을 떴는데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아이가 유소년스포츠단 입단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어서

유학을 그만두어야 하고, 중간에 그만 두게 되어 죄송하다는 연락이었다.  

다음달 6일에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갑작스런 통보에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네, 네, 어어쩔수 없지요.

그렇게 하셔야 한다면 그러셔야지요. 라는 말 밖에 하지 못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시 멍하게 앉아서 밥을 먹으며 나의 마음 상태를 살폈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놀랐고 천천히 진정이 되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부터 가는 날까지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내가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게 나 외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겠지하는 마음으로.


늘 있는 일이 아니어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2년 반 정도 같이 지내던 아이와 헤어지는 섭섭한 마음보다

갑작스런 통보가 준 타격감에 서운한 마음, 그걸 스스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있었다.


산촌유학을 하면서 우리는  서로 친밀하고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다.

먹고 자고 아주 기본적인 일상을 같이하는 식구이고 정서적 공감대를 이루고 삶을 함께 하는

또 하나의 가족으로 지낸다.

단지 아이만을 맡겼다가 데려가는 단순한 기계적, 물리적 결합만이 아니라 같이 사는 동안

서로 관계속에서 주고받고, 배우고 , 숱한 이야기를 켜켜히 쌓으며 서로 얽히고 설킨 유기적 관계인

가족으로 산다.


일년을 단위로 산촌유학은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일년마다 유학을 마치거나 또 한해를 더 유학을 연장하기도 한다.  

자연의 순환과도 같이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을 거치며 열매을 맺고 씨앗을 거둔다. 그리고 겨울에 접어들면서 봄을 기다리며 씨앗을 넣어놓고 다시 싹을 틔울 준비를 하며 서서히 한해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한해살이를 소중하게 여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자연의 순환에 따라 우리도 함께 순환한다.

한 바퀴 원을 따라 일년을 살다가 처음 출발 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 온다.

다시 돌아왔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한해살이 마지막 날에 일년 동안 각자의 변화와 성장을 돌아보며 기뻐하고 축하하며 갈무리한다.

갈무리해서 둔 많은 씨앗은 각자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어떤 때는 위로로 쓰고 어떤 때는 에너지로 쓰고 어떤 때는 가르침으로 쓰게 된다.


세상일엔 늘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아이들은 유학을 와서 서로 마치는 시기가 다르긴 해도 언젠가는 집으로 부모 곁으로 돌아간다.

당연한 일이고 모르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헤어짐은 늘 그렇듯 익숙하지 않다. 감정을 수습하느라 ...바쁘다.  

서로 주고 받는 정이 가족만큼 각별하다 보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언제 헤어질 지 모르는 서로가 깊고 정은 나누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러기에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에겐 헤어지는 날이 정해져 있다.


맺음식, 딱 하루 헤어지는 슬픔을 함께 나누는 날.

한 학년을 마치는 2월에 맺음식을 한다.

그날은 계속 유학을 이어가는 아이든 마치는 아이든 '맺음식'을 하고

유학을 마치는 아이는 '송별식'도 겸하게 된다.  

이 날은 함께 일년동안 살아 왔던 시간을 돌아보고 이야기하고 축하하고 기뻐하는 시간이다.

또 헤어지는 날이어서 슬프기도 한 날이다.

함께 마무리하면서 서로에게 받았던 고마움을 말로 전하고 좋은 인연이었음을 확인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바퀴 순환하는 동안 뭘하면 살았는지 보여주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준다. 또 유학을 마치며 자기 이야기를 하고 부모 이야기를 듣는다.

그 동안 마을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와 어른도 초대한다.

공연을 준비하고 한해살이 영상도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한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도 온라인 맺음식은 꼭 했었다.


맺음식은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다.

그 날을 통해 한 바퀴 일년의 순환을 함께 한 친구들임을 확인하며 정서적 일체감을 진하게 느끼고 갖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서로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지내다 다시 소호에서 만나 손 맞잡고

옛 이야기 꺼내서 알콩달콩 얘기하며 어릴 적 지금으로 돌아가자, 그런 친구가 되자 약속하는 날이다.  


가족이 아닌 우리가 소호에서 함께 보낸 시간을 함께 갈무리해서 가슴 속에 담아두는 의식인 맺음식은 우리들의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마무리이다.

소호에서 보내 시간을 함께 갈무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은 모두가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겨레,강민이 송별 겸 2021그루 맺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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