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 회사야 나는 이제 너랑 바이바이야
이 이야기는, 10년차 직장인인 나의 전쟁 같은 회사생활을 너무도 행복하게 끝내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기록물이다.
나는 2021년6월30일 퇴사한다. 5월28일까지 출근하고, 나머지 출근해야 하는 날들은 휴가일수로 퉁치게 되었다. 혹자는 말할 수도 있다. 너는 정말 좋은 혜자 기업에 다니고 있었구나. 수십일이 넘는 휴가를 그대로 다 쓰고 퇴사하게 해 주다니 그런 화이트한 기업을 그만 두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니? 아니다. 내 머리는 멀쩡하다. 이 보다 더 멀쩡하고 클리어하고 반짝반짝한 날들은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화이트한 나쁘지 않은 회사다. 작년 나의 연봉은 9년차에 1억800만원정도 되었고(2021년4월23일 환율), 연간 잔업시간은(하루나, 월이 아니다. 1년간을 다 더한 시간이다) 10시간이 안된 9시간이 아주 조금 넘는다. 직속 상사는 내가 출근을 했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며, 내가 뭔가 실수를 해도, 말도 안되는 걸 물어봐도, 어버버 해도, 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착한 아저씨이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퉁명스럽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츤데레 귀여운 아저씨다. 겉모습의 퉁퉁거림에 현혹 되서는 안된다. 직속상사의 상사, 우리 팀의 실장님도 좋은 사람이다. 워커홀릭이고, 자기마음같지 않거나, 자기의 야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관심과 인정이 오지 않거나 하면 가끔 폭언을 하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뭐 귀여운 수준이다. 그보다는 엄마의 암수술에 충분한 간병할 수 있는 휴가를 허가해주고, 재택근무가 흔하지 않은 시절에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배려해준, 그런 젠틀하고 인본주의 적인 상사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울면서 나리타 공항 가는 버스에서 전화했을 때도 원래는 회사의 제도상(제도가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회사내의 인사부와 부서의 인사부와 부장님과 쇼부를 쳐서, 한국에 들어간 후 자가격리를 하더라도 일본에 당분간 못 돌아오더라도, 장례식에 갈 수 있게 만들어준 그런 나이스한, 능력 있는 배려쟁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상황으로 일본에 있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한국에는 가지 못했고, 1년4개월째 엄마아빠를 못 만나고 있다. 참혹한 기분이다.)
집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일본이라는 보수적인 나라에서, 여자(일본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대놓고 이루어진다),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신용력과 연봉을 바탕으로, 100퍼센트 융자를 받아, 주택론의 이자는, 0.4%가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4%가 아니다. 1%미만, 심지어, 0.4%도 되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것은 내가 이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방패막이 없어지는 순간, 나는 일본에서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다. 사기에는 일본의 집도 너무 많이 올랐고, 100% 융자가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는 나는, 일본에서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니다. 잘 알고 있고,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벌써 10년차가 되기까지 이 회사에 붙어있었던 거고,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이지만,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쓰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사한다.
안녕 나의 회사야. 잘 있어. 나는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