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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다

자연인 능력 회복기

by Funny

자유는 생각보다 비쌌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미난 것이었다.


목공을 시작한 날, 바쁜 선생님은 나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무서운 톱날들이 붕붕 거리고 있지만 그냥 어깨너머로 익혀 나무를 자르고 강아지 밥그릇대를 만들었다. 강아지의 밥그릇을 어깨 밑 높이에 두는 것이 좋다지만 몇 만원이나 줘야 전용 그릇까지 살 수 있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다 싶었다. 하루만에 강아지 밥그릇 받침대가 완성되었다.


가볍게 사용할 좌탁도 만들고 테이블도 만들고 도마, 책꽂이, 식기 정리대, 이불칸막이, 선반 이것저것 만들었다.


내가 사용한 것은 온전한 나무가 아닌 다른 수강생들이 쓰다 남은 재료였다. 집에 딱맞는 작은 가구를 만들다보니, 남는 나무만으로도 자투리공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맞춤 가구들이 뚝딱이었다.


곡선이나 예쁜 모양은 아직 만들 수 없지만, 가구들 볼 때면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기시작했다. 만들 수 있나 없나,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게 변형할 수 있을까, 얼마의 재료비가 들까? 상상하는 것은 늘 즐거웠다. 미래에 집을 짓게 되면 이런 큰 테이블을 놔야겠다, 이런 재료를 쓰면 기성재료로 금방 벤치를 만들 수 도 있겠다, 싶었다. 그냥 나무를 사서 내가 만든다면, 생각보다 모든 것은 딱 나에게 맞는 사이즈로 생각보다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건에 대한 감사함은 덤이었다. 내가 만든 매트리스 받침대는 엉망진창인데 중국산 제품은 믿을 수 없게 쌌다. 내가 노동력을 무료로 재공해서 겨우 비슷한 수준이다. 현대의 공장 제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얼마나 싸게 모든 것을 가져다 주고 있는가. 내가 만들수 없는, 상상도 못할 곡선의 의자와 책상을 만들어서 팔아주는 수많은 가구 업체들. 사람 손으로 만든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야 할까…?


목공에 심취해 있던 중 손가락이 부러졌고, 무거운 것은 더이상 들 수 없었다. 지금이야 조금씩 회복해나가고 있지만 굽은 손가락과 예전과 같지 않은 가동범위와 힘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수술과 회복과 재활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사이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재봉이다. 우리 강아지는 몸이 좀 특이하다. 시판되는 옷을 입고 맞은 적이 한번도 없다. 그냥 흐린 눈을 하고 찍찍이로 조절하거나 자르고 이어서 추운 겨울에도 산책을 하던 것이다. 재봉을 하면, 딱 맞는 옷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번 그런 마음이 들면 알고리즘은 자꾸 그런 내용을 보여준다. 자수미싱을 사면 강아지 이름도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체험이라도 꼭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체험을 갔다.


모든 것은 다 어렵다. 그 간단한 진리가 나의 일이 될 때까지 알지 못한다. 목공을 하기 전에는 목공이 얼마나 성가신 일이며, 나무를 똑바로 자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평평하게 나무를 다듬는 일이 얼마나 시간과 손품이 들어가고 그래도 하기 힘든일인지, 알지 못했다.


재봉을 하기 전에는, 내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물품, 옷이 얼마나 복잡하게 되어있고 얼마나 귀찮은 작업을 거쳐서 얼마나 하기 어려운 일인지 미쳐 알지 못했다. 예상했던 것의 3배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거쳐 기초입문 과정을 끝내고, 생산중단되어 더이상 살 수 없는 아빠의 배게 커버를 만들었다.


이제는 원하는 사이즈의 베개를 원하는 원단과 색깔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이제는 원하는 사이즈와 두께, 색상, 종류의 테이블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완전히 독립해서 살아갈 수 는 없겠지만, 의, 식, 주 중에, 의를 이제 만들 수 (혹은 만들기를 도전 할 수) 있고, 주 안의 구성 요소인 가구를 만들 수 있다. 내가 자본주의에 완전히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무한한 자유를 만끽하게 한다. 내가 제도 밖으로 나가서 살아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잣대에 있지 않고, 않다도 된다는 확실한 허가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미싱이 도착했다. 이제는 남의, 가게의 미싱을 빌려 베개 커버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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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착한 미싱과 당장 수강한 강아지 케이프, 너무 너무 너무 힘들었다...:)

<여담>

프릴이란, 저주와도 같은 너무나도 힘든 그런 것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프릴들을 당연히 잘 예쁘게 달려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나는 잘못된 것이었다. 프릴은 수천만원 기계가 없다면 정말 만들기 힘들다. 아니지, 수천만원이라도 예쁘게 된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바이어스는 또 어떠한가. 이어붙인 자국이 있으면 안예쁜 부분이 있다며 불평하기 바빴지만, 3번 잘못박아 다시 박아보니, 바이어스를 잇는 다는 것은 그것은 매우 귀찮고 어려운 작업이다. 원단의 방향과 길이상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프릴과 바이어스와 돌려박기를 해주신 분들에게, 기계님들에게 감사하다.

앞으로는 모든 옷을 볼 때마다 감동적이고, 감사하고, 경의로울 것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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