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5살 때 결혼이란 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나에 대한 불안과 힘듦이 너무 많아서 그전까지는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정말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편해지고 나를 알아가고 괜찮아지고 행복해지니 아, 나도 이제 결혼이란 것을 해서 가정에 줄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주변의 시선 혹은 나의 자세가 예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나정도 되는 사람이 저런 친구를 만날 순 없지, 하는 급나누기, 내려치기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었다. 막상 결혼을 할 수 있는 됨됨이를 가지고 나니, 세상은 내가 하던 데로 급나누기, 내려치기를 꾸준히 잘해나가고 있어서 내가 설자리는 없었고 내향적이고 관계에 민감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몇 번의 소개팅과 소개팅 시도를 끝으로, 나는 결혼을 포기했었다.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생각보다 처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할 것보다 인간은 동물적인 요소가 강해서, 아이를 낳고 결혼도 하는 그런 가능성을 아예 놓아버리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당장 결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할 사람도 없고, 만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이 현실에서 나라도 잘 살아야 했다.
2024년에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다른 사람에게 강요를 하더라도 시키고 싶을 정도로 내가 확신에 차서 좋아할 수 있는 일에서 나의 역할을 가질 수 있게 기도 했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나에게 그런 목표가 생겼다. 2025년 1월에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 유학도 예정되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트럼프 정권이 나의 비자를 내려주지 않았고 나는 학비지옥 렌트비지옥 물가지옥인 뉴욕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은둔하며 다음 거취를 찾게 되었다.
다음 거취는 결혼 출산과의 트레이드오프가 되었다. 일본에서 평생 살 생각이 없는데 3년간의 박사를 일본에서 한다는 것이, 나의 사회적인 욕구와 목표를 위해서는 너무나 합리적이고 상상도 못 할 만큼 좋은 조건에 좋은 연구실이지만, 굉장한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출산과 결혼을 포기하기로 했고, 대학원 시험에 응했고, 합격을 했으며, 그렇게 내년에 진학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신이 얄궂은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되었어야만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인지, 그저 가능성의 포기가 힘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결혼과 출산이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란, 발생을 예측할 수 없는 사고처럼 돌발 발생하기 때문에, 애초에 존재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다. 상상할 수 없으니 예상할 수도 없고, 당연히 준비할 수도 없다.
내 인생에서 이제 처음 사회적 목표와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어른이에게, 사실 너에게 진짜로, 1번으로 중요한 건, 결혼이고 출산이야,라는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이제 일본으로 떠나 3년간 시골에 짱 박혀 있어야 하는 이 시점에.
처음 든 생각은 왜 지금이지. 왜 하필이면 지금이지. 왜 이제 수습이 안 되는 더욱더 불가능한 이 시점에 애써 마음정리를 했는데 그 과정들을 다 뒤로 하고 왜 하필이면 어릴 때, 청소년 때, 20대 때, 이럴 때 좋은 시절 다보내고 이미 거취를 정하고 사회적으로 나아가려는 지금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은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하나 일부러 인생을 더 힘들게 만드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안 들기는 힘들었다.
처음 겪는 첫사랑처럼 2주를 앓았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2026년에 나는 출산할 거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되면 되게 만들 거야. 지금은 결혼도 임신도 출산도 아무것도 모르니, 하나하나 준비해 나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