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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층 타워맨션 자가사는 리사원 퇴사일기

3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by Funny

20세기의 역사는 시간을 축소하는 과정이 주목받는 상황이 많았다. 시간을 축소한 다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열망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조차도 능력으로 판단하는 자본주의의 인적자본으로서, 나는 속도에 집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보다도 빠르게, 최연소, 최소, 그런 타이틀을 갖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교육을 받았으며, 그에 대한 성과도 있었고, 성과가 있으니 더욱 포기하기는 힘들었고, 나도 그 논리를 받아들였다. 회사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인정받겠다. 한번만 알려줘도 실수없이 업무를 수행하겠다. 이런 마음가짐은 일본회사에서는 전혀 필요 없었지만 나 혼자 그렇게 생각했고 (내가 만들어 낸)압박을 받으며 고분분투 했다. 20대 초중반인 그때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다른 동기들은 골드먼삭스나 멕킨지 같은 글로벌 기업에 가서 뭔가 엄청난 자본주의의 비밀의 대가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일본의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기업에서 구박을 받으며 별로 성장도 못하고, 딱히 대단한 스킬이 쌓이는 것도 같지 않고, 뭔가 이직을 하려면 커리어가 있어야 한다는데 막 회사를 들어온 내가 그런게 있을 리도 없고, 회사가 정해준 부서와 일이 나랑 맞지도 않는데 이걸로 커리어를 만들 수도 없고, 정리하면, 움직일 수가 없는 자가당착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나의 허상은 다 헛소리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영어를 20대 초반이되어서 시작하다니 가당치 않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9년간 매일 단어를 하루에 3개씩만 외웠어도 사전을 지금쯤은 씹어 먹어서 네이티브보다도 단어를 많이 아는 단어의 마술사가 되었을 거다. 이직해서 커리어가 분단되고 2년3년 늦어지면 인생의 실패자가 된다고 생각하여 다른 분야에 도전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2-3년차면 그냥 다시 취직해도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까지 큰 영향이 없다. 다시 시작하기 늦은 나이가 아니고, 딱 좋은 시기였다. 물론 뭐 사장이 될 수 없어요 이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장은 아무나 하고 싶은게 아니다. 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 옵션이 사라지는게 인생의 방향성을 못 바꾸는 이유가 되는건 우선순위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절약해봐야 겨우 천만원, 그걸로 어디코에 붙여? 하며 무시했던 작은 돈들이, 모았다면 몇 억이 되었겠지만, 야무지게 다 소비한 나는 지금 빚쟁이이며, 그때의 판단을 후회한다.

지금 아는 것들은 그 때도 알았다면, 일단 일본에 오지 않았을 거고, 왔다고 해도 성적을 그 딴 식으로 방치하거나 교환유학을 안 알아보는 피동형으로는 살지 않았을 거고, 회사에 들어왔더라도 이직 했을거며, 사람들은 다 쌩까고 돈을 모았을 거고, 대학생 때부터 요가를 시작 했을거고, 그때부터 행복했을거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것을 잘 하지 못하는데 본인의 사고와 인간관계가 경직되어 있다 보니, 인생에 있어서 삽질을 많이 한다. 물었다면, 알았다면 달랐겠지만, 삽질의 갯수분 나의 인생에 대한 단단함이 생긴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삽질로 점철된 인생의 경험상, 필요한 사람에게 물어볼 수 있게 되었고, 결정한 후에는 이 이상의 선택이 없다, 나에게는 이게 최선이라는 확신을 갖기 쉽게 되었다. 내 삽질이 아니었다면 얻기 힘든 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년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선택은 몇 가지 있다. 지울 수 없고, 바꿀 수 없기에, 그에 대한 나의 해석도 아직은 바뀌지 않기에, 주어진 그 요소들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현재에 존재할 수 있게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10년 뒤의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할 때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고 다시 돌아가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그때그때 잘 살아가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건, 애초에 일본에 오지 않았어야 했던 내가 이제와서 제 방향을 찾아 가려 하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걸렸지만, 돌아갈 뿐, 아직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돌아 간 만큼, 나에 대한 이해라는 무기와 행복이라는 베이스에 제대로 서서 나아갈 수 있다. 늦었지만 급하지 않다. 낭비되었지만 슬프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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