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4층 타워맨션 자가사는 리사원 퇴사일기

4 나는 나와 화해됐나보다

by Funny

噓つきはばれる。

회사의 사업계획발표를 듣고 있다. 거짓말과 변명을 정말 열심히 한다. 거짓말과 변명이니까 열심히 분칠하지 않으면 않을 것 같고, 노력을 하면할수록 사실은 청자들에게는 들킨다. 아, 쟤는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매주 토요일 오전 8시에 그룹코칭을 한다. 인생에서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을 설명하고, 이번주가 시작할 때의 나의 상황, 내가 뭔가 한 액션에 대한 설명, 액션에 대한 결과를 설명, 이로 인해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했는지를 그냥 말하는 거다. 3명의 그룹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코멘트를 해준다. 작년에 그룹코칭을 시작한 계기는, 돈은 없는데 카운셀링 같은 정신적인 효과가 있는 뭔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빚이 억단위로 있는 상황에서, 급진적인 절약을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알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는 카운셀링을 갈 돈은 없었고, 이 그룹코칭은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는 구조였기 때문에 막말로 돈이 전혀 없으면 당분간은 일단 나와만 보라는 친구의 말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그룹코칭이라는게, 그냥 일반인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의미가 강하고, 비전문가가 코멘트를 하기 때문에 가끔은 잘 안맞는 사람이랑 하면 신경질이 나는 일이 있기고 하다. 그래도 내가 1년이상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룹사람들이 좋았고, 그 사람들이 매주 캐치해주는 부분들에서 내가 다시태어나지 않으면 느끼지 못했을, 몰랐을 부분이 있어 나에 대한, 인생에 대한 공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화가 밀려오고는 했던 부분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나, 나의 설명을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환희짱은 항상 화가 나있어, 이런 말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화가 나있지 않았다. 가끔 화가 난 적이 있었을 수는 있지만, 내가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긍정적이고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면 힘이 빠지곤한다. 그것보다고,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감정 장애인가? 왜 나의 감정은 전달되지 않는가? 왜 나의 상황을 공감 해주기는커녕 화내는 인간, 부정적인 인간, 마이너스 지적질인가? 하는 고뇌, 그리고 그 고뇌로 인한 자신의 인간성에 대한 부정은 굉장히 힘들었다. 거기다, 화를 낸다는 그 말이 뭔가 찔렸다.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뭔가 화를 내는 것이라고 일본인들이 이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같다는 나 자신도 불안해지는 원인이 될만한 부정적인 감정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화안냈는데! 하기보다는, 나의 부정적인 무언가의 태도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주고, 사람들은 심지어 나를 늘 화를 내고 있는 심술쟁이 영감으로 생각하나보다. 이러다 혼자 늙어 죽겠다, 하는 논리비약을 하며, 슬퍼했다.

4월17일, 4월부터 시작한 새로운 그룹멤버와 진행해주는 진행자까지 세명이서 그룹코칭을 진행했다. 처음만나, 2번째 이야기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지도 않으며 그냥 서로의 이야기를 조금 들었던 사람인데, 뭔가 지금까지와는 반응이 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러원고, 부정적인 이야기가 없었고, 그냥 그래도 들어줬고, 반응해줬다. 코칭 중에는 대화를 하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무엇때문인지, 잘 몰랐다. 그냥 지금까지랑은 다르네요,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기뻐요. 라고 말하고 코칭을 끝냈다.

의문이 있으면 인간은 의문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같다. 왜 달랐나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보니, 갑작스러운 어느 시점에 아하 모먼트가 있었다.

나는, 나에게 변명하고 있었구나. 변명을 하느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사실이 아닌 이야기, 사실을 감추는 이야기, 그런대로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는 깊은 본심에 대한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었을거다. 복잡하고 어려운건 둘째치고, 진짜가 아니니까 사람들은 듣지 않았겠구나. 본능적으로 들을 가치가 없고 동정해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겠구나.

아니, 무엇보다도 나는 나에게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고 가까운 사람도 나의 사고양과 사고 깊이로 나에게 관심이 있지는 않다. 결국은 나혼자 나에 대한 생각을 하고, 내가 의심하고, 내가 신경이 쓰이고, 내가 변명을 시작했다. 그 누구에게 어떤 말을 들어도, 이게 얼마나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이것 좀 보세요 세상사람들. 이 사실을 알고도 나를 동정하지 않는다고? 내가 불쌍하지 않다고? 그래도 내 탓 한다고? 억울한 마음이 화난 것처럼 보였을 거고, 나는 더 억울 했을 거고, 마이너스 스파이럴이었다.

내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나에게 변명을 할 필요성이 없어졌고, 내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에서도 심플해졌고, 심플하니까 그냥 그 내용으로 이해가 된거 구나.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이해가 잘 됐다. 거기다 나에게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인생이 너무 행복해졌다. 힘들다고, 이상하다고, 바꿔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주지 않던 내가 갑자기 나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시작하니, 내가 만족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성격과 맞지 않는 고연봉을 위해 살아가고, 그러기 위해 참고, 다른 가치관을 변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하는 과정들이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그만둬보고 알게되었다.

그룹코칭을 같이 한 분이 내 이야기를 듣고 비움, 비어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의 10년간은 비움의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을 조금 버리고 더 버리고, 가치관도 버리고, 버리고 또 버리고. 그래서 내가 엄청 위대해졌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비움이란게 꼭 비운게 아니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버린 자존심만큼 버리지 못한 자존심은 더 강해졌고, 내가 버린 가치관만큼 남아있는 가치관은 더 뿌리 깊어졌다. 수, 가로길이, 이런 식으로 자존심과 가치관을 측정했기에 비웠다고 생각하고, 내가 멋진 인간이라고 나를 치켜세우고자 했지만, 강해지고 깊어진 만큼 세로길이가 증가해, 결국의 총량은 비슷비슷해 자존심 덩어리였지만, 내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렇지 않아 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니 모순이었을 거다. 보여지는 나는 자존심 덩어리인데, 자존심이랑 많이 버리고 겸손해졌어요 하니, 참나 이 생물은 또 뭔가 싶고, 나는 그 반응에 왜 세상은 나를 몰라주는가 하염없이 서운했다.

이시기의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나의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전부 다 포기하라니, 그건 너무 급진적이지 않은가, 내가 구도자도 아니고 무슨 종교인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밸런스를 찾아야하지 않겠나? 하며, 자본주의의 가치관인 사람들도, 다른 가치를 절대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도 모두 돌려깎기를 하며, 모두 비판하던 시절,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었다. 내 스스로도 돌려깎기 중이라, 그 그룹에 기분좋게 들어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 멋지지 못했던 시간을 거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얻은 힘으로 낸 용기가 이제는 행복하게 내맘대로 살아 보겠다고 결정을 한 후, 나는 0이 되어있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자존심도, 가치관도, 0이 되니,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도, 자존심도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런 행위가 없어지니, 왜인지 내가 편안해졌다. 사실은 내가 나를 판단하고 있었고,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었고, 내가 나를 변명하고 있었다. 0이 되니, 나의 알량한 자존심을 지킬 필요도, 나의 존엄성을 방어할 필요도 없어졌다.


4월23일, 회사의 부서인사부장과 퇴직 면담이라는 걸 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가 생각하는 진실의 모양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러나 그대로 전달은 안되겠지 라는 포기상태의 마음을 가지고, 공격적으로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내맘대로 사는 일 수가 몇일 있었던 때문인지, 그냥 중간지점에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정말 신기했던건, 내가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을 때 지켜지지 않았던 존엄성이, 이제는 내가 나를 존엄하다고 하기로 해서, 더 이상 남에게 무너지고 영향받지 않는 무언가가 생기고 나니, 남들이 나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배려해준다. 예전에는 안해주다가 지금은 해주는건지, 예전에도 지켜줬는데 내가 눈치를 못챈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장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도, 가장 나에 대해서 존중받았던, 신기하지만 기분 좋은 경험을 했다.

아, 물론 그렇다고 그들과 계속 지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44층 타워맨션 자가사는 리사원 퇴사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