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0년터널의 끝
90년대에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해주지 않을까? 대학에 가면 무한한 자유와 캠퍼스 커플에 엠티에 엄청난 즐거운 일들이 벌어질 줄 알았다. 고등학교까지의 인간관계의 힘든 같은 것도 없이, 비슷한 취향인 사람들이 모이는 같은 학교사람들과는 금방 절친이 되어서, 세상 행복할 줄만 알았다. 디테일이 뭐가 중요하라, 그냥, 고등학교 때 랑은 매우 많이 180도 다를 줄 알았다. 천지가 개벽하지는 않더라도, 나의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그럴 줄로만 알았다. 심지어 나는 재수를 했고, 삼수를 했기에, 그 얼토당토 않은 로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현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런 로망의 이야기는 백만번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에는 특히 광고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메시지 이기도 하기에, ㅇㅇ가있으면 완전히 다른 나, 행복한 나, 만족스러운 나, 자신감 넘치는 나, 등등등, 뭔가가 충족되면 ㅁㅁ가 되는데 그게 없어서 부정적인 상황이 있는 나로 연결되는 사고방식. 패션이 별로라 그런 것 같아서 옷도 사보고, 화장도 해보고, 살도 빼보고, 책도 읽어보고, 훌쩍 여행도 떠나보고, 인턴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고, 효도도 해보고, 운동도 해보고, 동아리도 들어보고, 이것저것 해봐도 내가 기대했던 대학 생활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취업시즌이 되었고, 어쩔 수없이 내키지 않는 손을 키보드에 옮겨, 자기분석이라는 걸 하고, 내정도 받고, 광탈도 하고, 어쩌다 취업을 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때 그렇게 시작한 나답게 살기를 시작하는데만 10년이 걸릴 줄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나니 겨우 십년이라는 두단어로 표현을 하게됐지만, 나의 10년은 결코 짧지 않았다. 하루하루라고도 할 수 없는, 매초로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는 고통의 나날 들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나고 하면, 그냥 INFP라서요가 제일 간단하게 잘 전달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면, 언제 끝날 지를 그때는 몰라서 였던 것 같다.
자존심을 조금식 버려나가던 시기, 이정도 버렸으면 다버렸지, 라며 매번 이제 다 해낸 듯한 마음이 들기에, 응? 아직 안끝났어? 이런 당혹스러운 마음. 5키로 중거리 달리기를 할 때, 10바쿼를 돌아야 한다기에 마지막 10바퀴를 온 힘을 다해 아, 힘들었다, 고-올! 했는데 1바퀴 더 있어라고 누군가 얘길하고 천근만근인 다리와 턱까지 차오른 숨을 부여잡고 이미 바닥에 뒹굴고 있는 몸을 일으켜 다시 뛰라니… 그말을 하는 사람이 특정됐다면 쥐어패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수십번 가져야 하는 나날들이었는데, 매번 심연까지 절망했고,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한탄만이 가득했다. 이 어둠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까지 해도 안된다고? 이정도 했어도 안되면 안되는거 아닐까? 해냈다는 인간들도 다 위선자고 거짓말 쟁이고 원래 불가능한거 아닐까, 영원히 나만 안 되는거 아닐까, 있는지없는지 모르는 끝, 올지안올지 모르는 터널의 끝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게 정말 힘이 안났다.
그러면서도 그 끝에 대한 환상이 현실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가 지금 이런저런 문제들과 스트레스에 진짜나로 살고 있지 못해서 그렇지, 내가 잘 살기만 해봐, 다 죽었어, 매일 날밤을 새는 열정으로 다해결하는거야! 이런 날림 마인드가 있었고, 진짜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했다. 뭔가 변명할 거리가 없어지는 그때, 뭔가를 했는데 생각처럼 안되면 나는 진짜 쓰레기인건가, 사실 잘 못할 것 같기는 한데,, 그날이 안오는게 낫기도 하겠다는 생각은 안해본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진짜나도 살아간 다는 것에 대한 환상은 끊임없이 존재했었다. 내가 얼마나 엄청나 질까, 얼마나 즐거울까, 밝고 주변사람들에 둘러쌓여 행복하고 막 엄청 좋겠지!! 이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사고는 근육과도 같아서, 나와의 화해가 끝이났지만 예전 같은 사고를 안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의 화해가 끝이 났다고 해서 갑자스런 찐행복이 햇살처럼 쏟아져 내리고 걱정 불안이 일절없는 그런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고민은 계속 생기고, 불안한 마음도 생기고, 이상한 로직으로 이상한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나지 않기도 하다. 그냥 예전이랑 별로 다르지 않다. 어제의 그 태양이 또 떠올랐고, 나는 또 그 하루를 살아 갈 뿐, 이 로망도 ㅇㅇ이있으면 ㅁㅁ된다, 이런 로직으로 이해하는 건 잘못된 이해였던 거다.
10년의 터널에서 드디어 뛰쳐나와, 자기와의 화해가 끝냈는데, 사실 변한 건 내가 점을 찍었다는 것 밖에는 없다. 그냥 이제는 내가 나의 동반자가 되어 준다는 것 밖에 없다. 절망이 있을 때 예전보다 금방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도 3년 전에 발견한 나의 자산이고,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목표로 한 일을 그날 끝내지 못해도 쓰레기라며 나를 욕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다독일 수 있게 된 것도 2년 전 세미나의 성과가 나온 것이었다. 10년동안 나는 나의 마음에 이런 저런 스킬을 더해갔고, 마음근육을 키웠으며, 따뜻한 사람들의 따뜻한 말을 채웠고, 그런 것들이 쌓였기에, 겨우 이제 내맘대로 살 용기를 가질 만한 힘이 있었던 것 같다.
10년이나 걸릴 걸 알았으면 시작도 못했을 것 같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 때의 나라면 화가 났을 법도 싶다. 모르는 게 약이다, 존버는 승리한다 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일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