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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층 타워맨션 자가사는 리사원 퇴사일기

6 그런감 2020년4월19일

by Funny

대학시절 기숙사에 살았다. 1 인기숙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나는 외로웠다.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외로웠다. 어쩔 땐, 남자친구가 있어서, 옆에 친구들이 살고 있는데 외로워서 더 외로웠다. 즐겁게 친구들과 놀고 집에 들어가는 그 시간이 외로웠고, 혼자 이불안에 들어가는 찬공기가 소름끼치게 외로웠다. 한국 텔레비전을 볼 수 없는게 왠지 더 서럽고, 왠지 더 외롭고, 외로움은 나의 그렇지 않아도 부대끼는 인생을 너무 힘들게 하고 실수하게하는 왠수 같은 존재였다.

외로움은 나를 약하게 했고, 사랑이란 감정으로 사랑받고 싶은 로망을 쓸데없이 강하게 만들었다. 드라마속에 나오는 그런 열정적인 사랑하면 그러면 없어질까 싶은 마음에 애먼 그 때 당시 남자친구를 괴롭히고는 했다. 연애를 하면서 꼭 즐겁지는 않더라도, 헤어지면 외로울까봐, 지금도 외로운데 얼마나 더 외로울까 두려워서 헤어지지 못하는 마음도 있었다. 외로움은 나의 아킬레스건 같았다.

회사에서 힘들 때 딱 하나 그래도 좋은 점은 외로울 시간이, 정신이 없기도 한 것이다. 바쁠 때는 뭔가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꾸역꾸역 버티다 보면 주말이 온다. 7일 중에 그래도 5일은 생각없이 시간이 가는게 꽤나 기분좋을 때가 있었다. 사고정지, 나쁘지 않더라. 하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시간이 있는건 외롭지 않은게 아니더라. 나는 외로웠고, 이상한 연애도 하고, 자괴감도 들고, 외로웠다.

강아지를 기르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개가 좋았다. 동내에 돌아다니는 개를 마구 만져 개벼룩이 옮아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난 뒤에는 엄마가 못하게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그렇게 동내개를 만지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개를 길러볼까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는 이런저런 공부를 했다. 요즘에는 개를 사지 말라기에 입양하려고 몇 달을 시도했다. 그런데 안된다더라. 나는 싱글이어서 안되고, 회사원이라 긴 시간을 비워서 안되고, 외국인이라 안되고, 코로나라 도쿄사는 사람은 안되고, 안되진 않는데 너보다 더 좋은 사람있어서 안되고, 맨션규율상 크기가 너무 커서 안되고, 하여튼 다 안된다고만 한다.

거절은 너무 아픈일이다. 행복하려고, 좋은 마음으로 입양을 하려고 한건데 거절도 한두번이지 몇 달을 안된다 안된다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이 지칠대로 지쳤다. 강아지를 보고라도 싶어서 몇주째 집앞의 애견샵을 종종거리며 바라만 보고는 했다. 그러던 중 어김없이 집앞 쇼핑몰 애견숍에가서 강아지를 보고 있는데, 구석에서 쭈구려 앉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점원이 밖으로 나와 말을 걸었다. 고객님 강아지 너무 귀엽죠, 한번 안아보실래요? 이 강아지 애교있고 너무 예쁜 강아지에요. 악마 같은 애견샵직원이 나를 꼬드기는 군, 하는 이성의 끈을 붙들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날 생리시작한 날이어서 그랬던 거 라고 믿고 싶다.) 그럴,,,까요? 하고 강아지가 내품에 왔다. 나는 개를 입양할 거니까, 애견샵에서 살돈도 없으니까, 내가 강아지를 안아보고 싶다고 강아지를 안아보는 건 강아지를 학대하는 거다 라고 이성은 외치고 있었지만, 강아지를 안아버렸다. 강아지라는 로망이 실현됐는데 뭐 그저그랬다 생각처럼 따뜻하지고, 푹신푹신하지도 않았다. 생각처럼 너무 귀엽지도 않았다. 뭐야 그냥 그러네 이 강아지가 내가 원하던 웰시코기도 검정강아지가 아니라 그런가 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게가 닫을 시간이라고 한다. 돈도 없는데 강아지를 내일만나요 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살게요 할 수는 없다. 그래 어쩔 수없지 건내주자, 하며 강아지에서 손을 때고 점원이 강아지를 두손으로 감싸 데려갔다. 나의 팔한쪽을 내어주는 가슴이 쑴풍 떨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당황스러웠다. 별로 예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미 그 강아지는 내강아지가 되었나 보다. 내 강아지를 데려가다니 억울함이 밀려왔다.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바로 또 강아지를 보러가고 싶었는데 근데 또 보러가서 뭐하나 어차피 살돈이 없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도 누가 사갔을까 주말인데, 요즘 코로나라 애완견이 많이 팔린다는데, 이러면서 나도 모르게 강아지를 보러갔다. 아직 가족이 생겼다는 표식은 없다. 4시간동안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점원에게 발견되면 어 어제 그 고객님 구입하려 오셨나요 할까봐 한가게 건너서 매우 수상한 모습으로 강아지를 숨어서 보고있었다. 생리중 가장 힘들때라 쓰러질 것 같았는데 강아지가 팔릴까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자궁근종으로 생리통이 심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미친놈 같았는지, 저녁을 같이 먹은 친구가 돈을 빌려준다고 한다. 회사에 휴가를 썼다. 강아지가 팔렸을까 점심시간에 날아가서 계약을 하고 왔다. 빚이 몇억있는데 몇백늘어난다고 뭐 그렇게 다를까, 하며 나는 강아지를 100% 빚으로 장만하고 말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니 뻥뚤린 가슴이 이제 아프지는 않았다. 다행스러운일이다. 그러나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강아지를 기른다는 것은 몇 달동안 이론을 공부했다고 해도 너무나 다른 일이었고, 생각한 것의 최소한 7배 이상 힘든일이었다. 너무 후회스러웠다. 나는 왜 빚에 허덕이면서 이 망할 강아지를 사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자괴감 밖에 들지 않았다. 아침저녁 산책을 시켜줘야하는 것도, 밥 안먹는 강아지 밥을 먹이는 것도, 물을 갈아주도 눈물을 닦아주고 이빨도 닦고 눈꼽도 띠고 귀청소도하고 똥오줌못가리는 강아지를 보며 마음도 졸이고, 쉽지 않았다. 병원비며 사료값이며 장난감이며 하나같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돈이 들었다.

그런데 나에게 외로움이 사라졌다. 내가 화장실에 가면 강아지가 늘 따라온다. 내가 뭘하는지 이제 이만하면 알만도 한데 늘 따라온다. 내가 뭘 하든 관심을 가져준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다. 내 연봉이 100원이든 100억이든 강아지는 그냥 나에게 관심이 있다. 강아지의 그런 태도가 나에게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아, 상관이 없구나. 그냥 나면 되는 거구나. 나의 이런 쓸모없는 가장 도움이 안되는 모습도 강아지는 좋아하는 구나 하는 체험이 나에게서 외로움을 없애 줬다.

나는 외롭지 않다. 강아지는 귀찮을 때도 많지만 나는 외롭지는 않다.

2020년4월19일 우리 강아지가 태어났다. 우리 강아지 이름은 그런감. 성은 그런 이름은 감, 그런감이다. 나는 감 있는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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