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는 호르몬의 노예
30대중반이 되고야 알게되고 놀란 것은, 내가 사실은 호르몬의 노예였다는 거다. 생리통, 그냥 원래 다 있는 건 줄 알았고, 생리통 따위로 쉰다니, 힘든 티를 내다니 그 때 너의 경쟁자들은 더 치고 올라가는거 모르니? 약간 이런 식의 메시지를 받던 청소년기를 보내다 보니, 나에게 생리는 저주스러운 것, 들켜서는 안되는 것,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들키지 않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회사에서 내가 아는 한은 최초로 생리휴가를 무려 수차례 쓰는 아이가,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런가보다, 하며 산부인과라니! 이런 마음으로, 그다지 병이라는 병일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생리를 할 때면 죽어버리고 싶다, 하는 격정적인 감정을 갖고 힘들어하고는 했다. 2020년에 들어와서 점점 그 정도가 심해졌으나 뭐 그러다 말겠지 라는 마음과 병이면 병원비도 없고, 치료는 아프고 싫다는 마음이 이겨 코로나 핑계를 대며 병원은 가지 않았다. 여름을 지났을 때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산부인과에 갔다. 자궁근종이었다. 뭔가 현상에 대해 원인의 이름이 붙으면 그 무언가가 이제는 아는 이름이 되니, 안도되는 한편으로는, 내몸에 7센티가 되는 덩어리가 별로 크지도 않을 것 같은 나의 장기에 붙어있다니, 나 시집도 안갔는데 이를 어째하는 불안감과, 수술 외에 나을 수는 없지만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그냥 호르몬 약 먹으면서 방치하라는 결론에 찝찝하면서도 찝찝안한것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마음이 들었다.
처음 약을 먹었을 때는 컨디션이 좋았지만 두번째 달부터는 부작용이 있었다. 생리를 하고 2주도 안되서 생리를 하고 거진 두달 가까이 생리가 아니지만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태도 지속되었고, 무엇보다도 호르몬의 널뛰기 생리를 약으로 진정시켜놓으니, 약을 안먹을때의 널뛰기가 정말 눈에 보이게 되었다. 아, 이게 호르몬의 작용이구나, 이건 내가 아니었구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일본의 약과 관련된 법상 3달에 한번 정도 생리를 한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그 조그만한 약조금 안먹었다고 재깍재깍 나오는 생리하며, 바로 불안정해지고 짜증이 솓구쳐나오는 그 썩는 기분하며, 물론 특히 안좋은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겨우 요가따위로는 진정이 되지 않는 누구하나 주먹으로 패야지 속이 시원할 것 같은 파괴적인 공격성이라든지, 정말, 가관이었다. 나는 정말, 생리를 하고 싶지 않다.
꼭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는 생리도 선택일 수 있다는 걸 몰랐고, 방법도 몰라서 알아볼 생각도 하지 못 했는데,, 내가 생리를 했던 그 20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안하고 싶다. 생리를 안하는 것만으로 나의 불행은 상당 부분 해결된다. 어제 깨달았다. 내가 나와의 화해니 뭐니 하고 있지만, 그딴건 다 소용없다. 내가 지금 몸이 아프고, 내 호르몬이 발광을 하고 있는데 그런건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생리를 세달에 한번하고, 세달에 한번 불행하다. 애 낳고 나면 그렇지도 않는다 이런 말이 있을 수도 있을 것같다. 그러나 생식기는 누구나 사용할 전제로 달고 태어난게 아니다. 필요가 없을 수도 사용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사용할때만 사용하는 기술도 없는게 아니다. 모든 생리도 고생하는 여성 대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생리 하지마요,,,,,, 당신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물리적인, 생물적인 방법이 있다오.
내가 호르몬의 노예라는걸 깨닫고 난 뒤에 나는 조금더 자유로워 졌다. 예전에는 좀더, 컨트롤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컨트롤을 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고, 받아들여야하는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생물이고, 포유류이며, 그 중에 인간이라는 종이다. 인간의 머리에서 마음안에서 여러가지 신묘한 일들이 일어날 지는 모르지만, 몸뚱이에 그다지 특별한 것 없다. 그냥 심장이고, 장기고, 그렇다.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할 때 나는 4시 50분이면 눈을 뜬다. 어슴프레 밝아오는데 생체시계가 그대로 나를 깨운다. 그런데 호르몬의 노예인 나도 요즘은 5시반까지, 심지어는 6시 반까지도 늦잠을 자곤 한다. 호르몬의 노예인 나주제에 뭔가 더 복종하고 있는 스트레스가 생겼나보다. 나를 지랄발광시키는 호르몬 님보다도 더한 존재라니,,,,,,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지만 그래도 또 일상처럼 그분의 존재를 찾으러 가봐야 겠다. 내일은 개운하게 4시50분에 세상과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