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결혼 임신 출산하기로 결심한 아직 싱글

임신: 8. 과정 - 트리거

by Funny

처음이란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처음 과정을 시작하고 겨우, 10만에 난자를 채취한다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영겁의 시간이 지나 최소 아무리 못해도 3주는 지난 것 같은데 겨우 10일 만에.

믿을 수는 없지만 눈앞에 숫자가 그러하니 그렇구나 하며 트리거 주사의 설명과 난자채취 시술을 하는 날짜와 시간 주의 사항 등을 간략히 들었다.


글쎄 우리나라 사람들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굉장히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난임병원이라는 것이 결국은 서비스업에 준하는 것이라 그나마 설명을 해주는 게 이모냥이라는 것이 어이는 없지만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온 나의 결론은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경험이 없어도 당연히 알 것으로 생각하고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알 수 없었으며 여러 가지 몰라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나중에 하나둘 터졌다.


트리거 주사를 놓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일단 2-3일 째부터 이미 걷기에 지장이 생겨(물리적으로 못 걷는 것이 아니라, 예민한 나의 느낌상 이상하고 불쾌하고 조금은 아파서) 달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마지막 3일은 주사도 너무너무 아프고 배는 이미 벌집이 되었고 배는 점점 나오고 이제는 포도송이가 배 안에서 출렁거려 그냥 존재자체가 힘들었다.


AI선생님께서는 임신하는 것은 점진적이나 이 시술은 너무나 급작스럽게 호르몬을 올리고 하기 때문에 몸에 충격과 불쾌감과 배의 불편함은 더 클 수(다른 쪽이겠지만) 있다고 했다. 일단 임신은 안 해봤으니 AI선생님께서 매우 옳다. 정말 힘들다. 이렇게 힘들다면 임신은 재고를 하고 싶은데 임신보다 힘들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도 임신은 좀 더 너그럽게 생각을 하자,라고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냐면, 버스를 타는 것도 아파서 의자를 잡고 팔로 지탱해서 가야 했다. 물론, 내가 예민해서 그럴 순 있다. 그러나, 버스를 탈 수 없어지고, 팔자걸음으로 노인처럼 걸으며, 나는 알았다. 아, 노인들이 임산부들이 그렇게 걷고 싶어서 그렇게 걷고, 안 뛰고 싶어서 안 뛰는 게 아니구나. 그냥 물리적으로 나는 뛸 수 없었고, 뛰는 개념이 사라진 몸뚱이는 자연스럽게 팔자걸음으로 어기적 거리고 있었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 겨우 7일 만에 정상인, 러너에서 팔자걸음으로 달릴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나의 뇌가 그렇게 알 수는 없다. 그러기에 나는 적응을 할 시간이 없었다. 초록 불이 이미 진행된 횡단보고, 평상시에는 3초만 있어도 단거리로 좀 뛰면 여유롭게 충분히 갈 수 있다. 그런데 겨우 좀 진행이 된 신호였건만 나는 80퍼센트 밖에 건너지 못했고, 차 안의 운전자는 나에게 욕을 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정상인이어야 할 외형의 여자가 노인처럼 어기적거리면서 걷는 것은 '태만' '권태'로 보일 수 있었을 거다. 그냥 싹수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나의 몸의 인식과 뇌의 인식이 다른 뛸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냥 일상에서 욕을 들으며 모멸감을 오랜만에 느꼈다. 내가 남자였다면 이런 모멸감이 들게 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약자에게만 화를 낸다. 대한민국에서 남녀차별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대 인간으로 여성에게, 특히 나처럼 체구가 작은 여성에게 선택적 모멸감을 주는 행위자는 늘 존재해 왔다. 이는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 모든 연령과 성별과 인종에서 그냥 발생한다. 나는 이에 익숙해져 있고, 이런 동물적인 미성숙한 태도로 상처받기에는 너무 많은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이 운전자는 나에게 모멸감을 줬다. 왜냐하면 나는 약해졌고, 공격당할 수 있었고, 상처받지 않기에는 너무 불안정했다.


우울증을 극복했다고 100% 자신했던 상황에서 이런 변화는 꽤나 당황스러운 것이다. 희망차게 새해 준비를 해서 계획을 이것저것 써대던 입장에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나의 아이덴티티가 건강한 러너였을 때는 손가락이 부러져서 장애처럼 휘어졌어도, 오른쪽 엄지가 갑자기 염증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평생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 때도,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신체적 한계가 누가 봐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생기고 스피드라는 실체가 바뀌었을 때, 버스라는 대체 이동수단도 이용하기 힘들어졌을 때, 나의 아이덴티티는 변했고, 변한 신체의 나의 아이덴티티는 그다지 건강하지도, 희망차지도 않았다. 그냥 다시 예전처럼 우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들었다.


트리거 주사는 생각보다는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프기도 했다. 벌집 같은 배에서 그나마 덜 찌른 곳에 찌르려고 해서인지 근육을 찌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피가 났다. 이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 미안하지만, 일본이라면 이런 식으로는 진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일본이라면 앵무새처럼 할 말만 반복하며 생각해서 하는 설명과 보충도 해주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무조건 일본의 방식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왜 배에 일반인이 주사를 놔도 되는지, 왜 이 부위에 놓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피가 날 수 있는지 없는지, 피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으로 설명을 해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반인이 갑자기 주사를 쥐어주면 다 뿅 하고 주사를 놓고 하는 게 아니다. 추가로 주는 주사기가 있다면, 왜 추가로 주는 건지. 어떤 상황에서 주사기를 바꿔야 하는지, 최소한의 설명을 해줘야 했다. 그런 설명을 듣지 못한 나는 그냥 아무 데나 찔러댔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주사에서 피가 났고, 가장 중요한 주사를 잘못 놨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냥 아픈 것은 당연하다.


트리거를 맞고 다음날은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것이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미 나의 배는 너무 불편했다. 그냥 빨리 시간이 지나기 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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