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9. 난자채취
난자채취 당일의 아침은 당연히 잠을 좀 설쳤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단 몸이 불편하다. 거기다 불안하다. 의사들은 몇 개의 난자가 채취가능할지의 퍼센티지조차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해는 간다. 일단 10개의 가능성이 80%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80%도 받아들이는 냉정하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인간 개체수는 너무 적어서 그냥 말을 하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는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도태될 거다. 왜냐하면 인간의사에게는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을 하겠지만 AI의사에게는 그런 반응을 하지 않고 80%로 반응을 할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AI가 훨씬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23시부터 단식을 하고, 다음날 이른 시간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모든 옷은 벗고 수술복 같은 것을 입고 산부인과 의자 같은 곳에 앉았다. 나는 이런 곳에서 한다는 건가 뭐지 시작되는 건가 싶은데 뭔가를 푹 찔러 넣는 다. 이제 마취할 거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아픈 건지, 아픈데 뭐 별말도 없다. 이렇게 막 말도 안 하고 시작을 해서 내 장기를 헤집어 놓는다고? 나 마취도 안 해준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마취가 시작한다며 심호흡을 하라고 한다. 심호흡을 왜 하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을 떴다. 끝났다고 한다.
마취란 참 신기한 거다. 갑자기 인간의 의식이 날아간다. 그때의 나는 나라고 할 수 있을까.
25개가 채취가 되었다고 한다. 뭐지? 아무리 난자 나이가 24살-25살이 나왔다고 해도 25개는 가능하지 않다. 이 숫자는 20대 초반이나 다낭성에서 있을 수도 있지만 한 번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이상한 숫자다. 처음에는 감사했다. 이 고생을 1번만 해도 되는구나 싶었다. 간호사의 입에서 입원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그냥 감사했다. 25개나 나왔다면, 그래서 이제 안 해도 된다면 그게 더 이득이다. 그냥 감사하기로 했다.
입원은 처음이다. 나는 입원을 해본 적은 없다. 입원이란 엄청나게 아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위험을 미리 관찰하기 위해서, 그리고 수액을 맞기 위해서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소가 과자극 되어있을 경우 복수가 찰 가능성이 높아서 입원하고 수액을 맞는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막 이것저것 이제야 설명을 해주셨지만 그냥 다 늦으셨어도. 미리 설명을 해주셨어야 줘. 왜 이런 설명을 하기 전이 아니라 하고 나서해 주는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설명 비슷한 것을 입원을 한다는 인생의 충격적인 이벤트를 경험하면서 해줬다.
입원생활은 생각보다는 나빴고,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나빴던 점은 나의 바람직하지 않은 혈관 때문에 오른손잡이인 나의 오른팔에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어야 했기에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고 아팠다는 것과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생각보다 좋았던 점은 입원 중에는 4번 5번 똑같은 말을 들었을 정도로 설명을 많이 해주셨다는 점이다. 굉장히 의아하긴 하다. 지금까지는 노설명 질문을 하면 왜 그런 질문을 하지?라는 반응이 나왔는데 입원 후에는 왜 똑같은 말을 모든 간호사님들이 해서 5번 듣게 하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매뉴얼이 없던지, 서로 간의 신뢰가 없던지, 그냥 방침이던지, 모르겠다.
새벽에도 나이트 담당 간호사분이 계셨다. 잠을 설쳤으니 4번 들어와서 수액을 체크해 주시고, 갈아주시는 것을 보면서, 아, 정말 고생하시고 감사하다.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입원이라는 것을 하면서 참 감사하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이 잠도 안 자고 이렇게 고생하나 그냥 감사했다.
그렇게 다음날 수액을 맞고 진료를 보러 갔다. 또 초음파를 봤다. 나의 난소는 포도처럼 다낭성난소가 되어있었다. 이제 안 해도 되냐고,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봤는데, 다낭성끼가 있어서 25개가 나왔지만 절반은 미성숙한 난자이고, 내가 사용을 할 때 그 난자들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할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현실에서는 그런 기술이 없고 나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1번 더 해서 개수를 채우는 게 좋겠다고 한다. 한 사이클 쉬고 다음에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많으니 일단 생각을 해보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일단은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집에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낭성 약을 먹고 남은 항생제도 먹고 조금씩 걷고 경구수액을 먹고 하면 나는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래서 퇴원을 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