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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Aug 20. 2021

인간중 누가 가장 셀까?

#12. 누가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인가.


거지 같은 임용과정을 거쳐 6개월짜리 기간제 초등학교 교사가 된지 딱 일주일. 그동안 내가 느낀 점이 있다면 실습 때 느꼈던 스트레스는 담임으로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쉴 새 없이 귀찮게 하는 아이들은 있던 관심도 떨어지게 할 만큼 나를 힘들게 했다. 거기에 더해지는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 유지, 극성인 학부모들 케어까지. 정말 6개월짜리 기간제한테 뭐들 이렇게 바라는 게 많은 건지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그나마 좀 가만히 놔두는 점심시간. 식전 기도로 일용할 양식을 주어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제발 밥 먹는 동안은 나를 좀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 라는 소원을 살짝 덧붙이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먼저 식사를 끝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식판 검사를 받고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집중하고 싶지 않아도 아이들의 아직 마모되지 않은 목청은 내 귀를 열어젖히기에 충분히 컸다.


오늘의 주제는 누가 세상에서 제일 센 사람 인가였다. 아직 사회적 동물이 덜 된 저 어린 짐승들에게는 무력이 멋짐을 구분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누구는 아이언맨이 세상에서 가장 세다, 누구는 헐크가 제일 세다, 누구는 스파이더맨이 제일 세다, 각자 자기만의 이유를 대며 한창 논쟁을 펼쳤다. 역시나 호크아이는 없나 생각을 하며 키득대던 차에 한 아이가 불쑥 말했다.


“우리 아빠가 제일 세.”


이게 웬 뜬금없는 효자의 참전인가 싶어 바쁘게 놀리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무리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 아이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이름을 떠올리는데 몇 초 정도 걸릴법한 그런 아이. 갑작스러운 아빠의 참전에 성격이 괄괄한 한 아이가 자신의 아빠를 들이밀었다. “우리 아빠가 더 세거든? 우리 아빠는 태권도 관장이야.” 또 다른 아이는 자기 아빠는 군인이라며 태권도 관장보다 군인이 더 세다고 말했다. 요즘 어디서는 아이들의 부모 재산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던데 여기 3학년 2반에서는 갑자기 아빠들의 콜로세움이 열렸다. 제일 먼저 자기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세다 했던 아이가 말을 덧붙였다.


“진짜로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세.”


저 나이대 애들한테 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강한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 흐뭇하게 수저를 다시 들었다.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그 아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경찰도, 아무도 아빠를 못 이기는 거야.”


오 하나님. 제발 밥 먹는 동안은 저를 좀 가만히 내버려달라고 했는데 그걸 하나 안 들어주시네요. 저 아이가 방금 내뱉은 말의 의미를 알아챈 사람은 이 교실에 나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을 터였다. 다시 보니 아이는 너무 전형적으로 이 더운 날씨에 맞지 않게 긴팔 옷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또다시 수저를 내려놓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이 급식을 앞으로 오래오래 먹을 수 있을 것인가, 괜히 위험한 사람 건드려서 6개월도 못 채우고 집에서 컵라면이나 먹을 것인가가 달려있었다.


그 뒤로 전투에 뛰어드는 몇몇 아빠들의 근거 있는 강함이 들려왔다. 나는 아직 약하디 약한, 단 6개월짜리 기간제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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