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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08. 2021

#4. 나방파리

#4. 나방파리


 정말 격하게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입냄새만 대충 가릴 요량으로 양치질을 하고 있는 그의 곁에, 매번 어디서 생겨나는지 모르겠는 날파리가 주변을 맴도는 것이 보였다. 손으로 휙하고 낚아챈 뒤 주먹을 펴보니 이런...시체가 없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는데 위잉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날파리가 그의 귓속으로 들어가는게 느껴졌다.


 동시에 귀를 쎄게 짝 쳤지만 방공호 속으로 몸을 피하는 것마냥 귓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거슬리는 날개짓 소리가 asmr처럼 그의 고막을 직격으로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뿔사 싶어 손가락으로, 면봉으로 귀를 후벼봤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파고드는 느낌이 들뿐이었다. 불쾌함과 동시에 살짝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 먼저갔다가 조금 늦게 출근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팀장이 뭐라뭐라 말하는데 날파리의 날갯짓 소리가 신경이쓰여 듣는둥 마는둥 대충 대답하고 그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집 밖으로 나와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는데 그의 귓속을 이리저리 뒤져보던 의사는 안쪽에 벌레같은거는 없다고 말한다...그럴리가 없을텐데... 진료는 그렇게 10여분 만에 끝났지만 이런 꿀같은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지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어젯밤 하다만 승급전을 플레이하러 근처 피시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즐거운 두세시간이 흐르고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해서 회사로 돌아가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팀장은 언제나처럼 굳은 표정으로 그를 팀장실로 부르더니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어제 일 마무리를 그런식으로 하고 퇴근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늘도 귀에 벌레 들어간게 이렇게나 오래 걸릴 일이냐며 도대체 생각이 있냐는 식으로 화를 낸다.


 그 소리를 듣던 중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서 빠직하는 소리가 나더니 조용하던 날파리가 다시 난리를 치기 시작한다. 그 의사 역시 돌팔이었어라는 생각을 하며 지금 귀에 벌레가 아직 있어서 그런데, 나중에 다시 말씀하시면 안되겠냐고 말하니, 문제가 있을때마다 매번 이런식으로 넘어가서 되겠냐는 말이 돌아온다. 팀장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날파리도 그에 맞춰 더 심하게 난리를 친다. 그 뒤로 몇분동안 이어지는 팀장과 날파리의 괴로운 듀엣을 근근히 견디고, 그는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팀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리로 돌아가서 앉으니 옆자리의 입사 동기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담배를 피러가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 깊게 들이마신다. 담배 연기가 훈연제같은 역할을 했는지 그렇게 시끄럽던 날파리가 조용해졌다. 회사다니기 힘들지 않냐는 동기의 물음에 그는, 팀장같은 꼰대들 때문에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동기는 웃으며 팀장이 꼰대같기는 하다며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다가, 그래도 팀장은 그를 챙겨준다고 그러는건데 매번 그렇게 핑계대고 주어진 업무도 대충해서 되겠냐고, 같잖은 충고를 하기 시작한다. 그는 날파리도 그렇고 팀장도, 이놈까지. 오늘 무슨 날을 잡았나,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시작된 날파리의 날갯짓 소리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의 어깨를 툭치더니 잘해보자는 말과함께 동기는 먼저 내려간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는, 다시 한번 훈연제 같은 역할을 기대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모금 깊게 들이마신다.


 그의 귀에서 날파리가 몇마리 빠져나와 날아간다. 들어간것은 분명 한마리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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