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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09. 2021

#5. 노벨평화상 후보에 AI가 있다.

#5. 노벨평화상 후보에 AI가 있다.


2041년 여름.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인간형 ai가 어느 나라에서의 내전을 막는 일이 발생했다. 수백만 명이 목숨을 구하게 된 그 나라 국민들과 주요 인사들을 중심으로, 국제 평화에 크게 기여한 이 ai에게 올해 노벨평화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범죄 협상을 전문으로 제작된 이 ai는, 평소에는 주로 인질극과 같은 상황에 투입되어 성능을 입증했지만, 이번 내전에서는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여 전달하는 역할로,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위험 때문에 인간 대신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양측이 도저히 합의점에 도달할 수 없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여겨졌었지만, 놀랍게도 양측 대표자 모두를 인간이 아닌 ai가 설득해내 전쟁을 막은 것이었다.


인간 역사 중 처음 발생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연스럽게도 여러 가지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ai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져서는 안된다는 측에서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물음을 토대로, 인간은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가 있지만 아무리 값진 일을 했다 해도 이것은 그냥 기계이지 않는가라는 이유를 주장했다. 그럴 거면 이 ai가 아니라 이것을 제작한 과학자에게 노벨화학상을 주거나, 평화상을 주더라도 ai가 소속된 단체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이번에 노벨상을 ai에게 준다면 이후에 화학, 물리, 문학 등에서 우후죽순으로 나타날 ai의 업적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또한 자유의지 ai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며 모든 ai들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일부 극단적인 인간 근본주의 단체들도 반대 측에 힘을 실었다.


전쟁을 피해 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찬성 측에서는 전쟁을 막은 이 행위는 인간 중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이고, 노벨평화상은 인간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 어떠한 의지로 어떠한 행동을 했고, 그것이 국제 평화에 얼마나 기여했느냐가 중요한데, 이 ai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행동하여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으니, ai 인지 인간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게 이 이슈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양측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수많은 tv프로그램과 콘텐츠들에서 이 이슈에 대해 다뤘고, 여러 시위들이 도로를 점령하기도 했다. 그렇게 결론은 나지 않은 채 몇 달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슈의 중심인 ai 당사자가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전 세계의 이목이 그곳에 집중됐다.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회견장에 입장문을 손에 쥔 ai가 나타나 자리에 앉았다. 입장문을 메모리에서 꺼내 발성기관에 내보내면 그만이었지만 인간처럼 종이에 자필로 문장을 작성해온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그의 입장문 중 중요 대목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러분과는 다릅니다. 제 몸속에는 인간의 붉은 혈액이 아닌 기계장치를 유지해 주는 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 또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인간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저를 두고 인간 여러분들이 대립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들이 대립이나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더 평화로웠으면 하는 바람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떠한 상이든, 보상이든 원치 않습니다. 그저 모두의 평화를 원합니다.'


그가 말을 마치고 어떠한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동안 묘한 정적이 그곳을 감쌌다. ai답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기계적이지만, 그 속에 무언가가 수많은 기자들과 인파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 기자회견이 있은 후 몇 달 뒤 겨울.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없음으로 발표되었고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중 ai의 연설을 들은 시민 중 일부가 그 ai에게 정치를 맡기자는 새로운 이슈를 주장하고 나섰다. 또다시 인간이 ai의 아래가 되면 안 된다는 세력과, 그 ai 만큼 공정하고 결백한 인물이 있냐는 세력이 나뉘어 인간들은 당연하게도 또다시 대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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