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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12. 2021

#6. 형제보살

#6. 형제보살


먼저 세상을 뜬 아버지의 빈자리만 한 구멍이 한쪽 벽에 뚫려있는 우리 집.


바깥 밤바람이 문풍지 틈 사이로 귀신 곡소리 같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종일 공복으로 지내서 그런가, 뱃속에 들어온 찬 공기는 내 몸속 이곳저곳을 더욱 시리게 훑고 다녔다. 동생과 함께 덮고 있는 이불 위로 아버지가 덮던 이불을 덧대고 있지만 아버지는 생전에도 그랬듯 우리 둘을 감싸주지 못하는 것 같다.


추위에 취해 잠이 든 줄 알았던 동생이 문득 내게 물었다. "형. 귀신이 진짜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했다. "낮에 시장에서 굿하고 있는 걸 봤는데 여자애가 귀신 씌여서 그거 떼어내주는 거래. 근데 걔 보니까 진짜 귀신 있는 것 같더라. 눈 뒤집어져서 막 부들대고 그러는 거 있지." 동생이 말했다. 동생은 굿판에서 떡이라도 좀 얻어먹었으려나 생각하며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빠도 귀신이 됐을까?" 동생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글쎄. 아빠는 아마 귀신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아."라고 대답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승에 원한이 많으면 귀신이 된다잖아. 근데 아빠는 아마 저승이 여기보다 더 행복해서 귀신이 될만한 원한이 남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나는 천장에서 멍하니 벽에 뚫린 구멍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그렇겠다. 그럼 나는 죽으면 꼭 귀신이 될래. 귀신이 돼서 세상 모든 음식을 먹어봐야지." 동생이 마른 기침을 몇 번 하며 말했다. "죽지 말고 악착같이 살 생각을 해야지. 개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잖아. 내일은 시장 안 열리니까 버섯이나 칡뿌리라도 캐러 산에 가보자." 나는 이불을 동생 쪽으로 조금 밀어내며 말했다. 깜깜한 방에서 벽에 뚫린 구멍을 보고 있자니 구멍이 점점 더 커보이고 바람은 더 세차게 들어오는 것 같아 눈을 떼고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만약에 그렇다는 거지. 만약에." 동생의 대답과 동시에 뱃속에서 수챗구멍에 물이 다 내려가고 나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내려갈 물도 뭣도 없다는 소리였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근데. 무당은 돈 많이 번대." 동생이 침묵을 깨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귀신 떼 주는 굿 한 번만 해도 몇백만 원은 그냥 받는다던데." "무당은 아무나 하냐. 귀신은 본적도 없는데. 그리고 나는 귀신 보면 무서워서 그런 거 못할 것 같아." 뱃속이 허하니 몸이 더 추워지는 것 같아서 이불을 뒤집어쓰며 대답했다.


"만약에 그게 나면? 나라면 안 무섭지 않을까?" 동생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말했다. 이불 속에서 마주친 동생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들떠있는 느낌이었다.


"만약에 형이나 나랑 둘 중에 한 명이 먼저 죽으면 꼭 귀신이 되는 거야. 귀신이 된 다음에 아무한테나 들러붙어서 괴롭히고 있으면 남은 한 명이 무당인척하고 퇴치해 주겠다고 하는 거지. 그러고 나서 굿판 상 맛있는 음식으로 잘 차려주면 그거 맛있게 다 먹고 퇴치된 척 떨어져 주는 거야. 그러면 한 명은 몇백만 원 벌고, 한 명은 배 터지게 맛있는 밥 먹고. 몇 번만 하면 금방 부자 되지 않을까?" 동생은 신이 난 듯이 말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동생의 신이 난 목소리와 벽에 난 구멍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소리가 한데 섞여 뒤집어쓰고 있는 이불 속을 돌아다녔다. 죄책감과 동시에 책임감이 들어 무거워진 손을 뻗어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그래. 꼭 그러자. 재밌겠다. 내일 아침 일찍 산에 가야 하니까 얼른 자." "히히. 맛있겠다." 동생은 이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지 동생의 배에서는 더 이상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도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동생과 함께 이불 속에서 온기를 나누며 밤을 보냈지만 그날 밤은 이상하게도 몸이 시릴 만큼 추웠다. 아침에 보니 원래 있던 구멍 옆에 조그마한 틈이 하나 더 생겨있었다. 아마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서 그만큼 추웠던 것 같았다. 얇은 문풍지로 틈을 메우고 난뒤 동생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


산 중턱쯤에서 구덩이를 깊게 파다보니, 겨울산에서는 정말 귀하다는 도라지가 한 뿌리 있었다. 엄청난 횡재였다. 흙을 살살 털어 동생 입을 열어 넣어주고 나도 조금 뜯어 먹었다. 어지간한 약초보다 좋다던 겨울산 도라지를 먹어서 그런지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때보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 뒤로 우리는 다 무너져가는 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우리 집에 형제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무당집을 차렸다. 며칠 뒤 첫 손님이 찾아왔다. 시장에서 한과를 파는 아저씨가 아들을 데려왔다. 평소에 우리들을 가난하다고 무시하던 아저씨다. 동생이 첫번째 손님을 아주 잘 고른 것 같다.


어서오슈. 딱 보니 귀신 붙어셔 오셨구먼. 등에 아주 착 달라붙어있어. 못 먹고 죽은 걸귀가 붙었는데 이놈 떼내려면 상을 아주 잘 차려야겠네. 금액은 어떻게. 많이 알아보고 오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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