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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13. 2021

#7. 도플갱어

#7. 도플갱어


영화 관련 시상식 중 가장 권위 있다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 세계 수많은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그곳에서, 한 남자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기존 3회 수상을 뛰어넘는 4번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었다.


매 작품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이 놀라운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첫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당시에 했던 인터뷰 이후 도플갱어라는 별명이 이름 앞에 붙는 사람이었다. 그는 해당 인터뷰에서 엄청난 연기력의 비결에 대해 묻는 질문에, 자신은 배우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원고 속 인물의 도플갱어가 될 뿐이라고 대답했었다. 도플갱어를 만나게 되었으니 한 명이 사라져야 하는데, 운 좋게 원고 속의 인물이 사라지고 자신은 살아남아서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라는 도플갱어 괴담을 인용한 말이었다.


그 인터뷰를 보고 들은 당시 사람들은 배우로서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자신감을 도플갱어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멋진 인터뷰 스킬이라 이해하고, 그의 이름 앞에 도플갱어라는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듯, 그는 매번 새로운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아니, 새로운 사람이었다가 맞는 표현이었다.


첫 번째 영화에서 감성적이고 점잖은 소설 작가를 연기했던 그는, 이전까지 배우로서 불편한 점이었던 난독증이 영화 촬영 이후 완전히 사라졌고 실제로 집필에 몰두하여 이듬해 소설책을 출간하였다. 두 번째 영화에서는 틱장애를 앓고 있는 우울증 환자를 연기했는데, 영화 촬영을 끝마친 이후 실제로 주인공과 같은 틱 증상과 우울증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병원을 다녔다고 했다. 세 번째 영화 원고를 받기 전까지 공백기가 길어지자 우울증 증상이 악화되어서 수차례 자해까지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그러한 몇몇 사건들이 이어지자 누구는 그를 콘셉트에 잡아먹힌 괴물이라 비판했고, 누구는 그에게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 역할을 맡기면 어떻게 되는 거냐 궁금해했고, 누구는 그가 해리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게 아닌가 하며 그의 정신 상태를 걱정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연기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플갱어라는 별명을 활용한 콘셉트 마케팅이 너무 과하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의 영화는 모조리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네 번째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개봉 이전부터 이목을 끌었던 이번 영화에서 그의 역할은 신이었다.


자신의 세상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위태로워진 세상을 조율하면서 신이 겪는 고뇌와 결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번 영화는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내는 모든 창작활동의 고뇌를 신의 능력과 역할에 비유하여 표현했다. 그 속에서 그는 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신에 아주 완벽히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의 연기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러한 흥행으로 인해 그는 이번 영화로 4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었다. 수상자로 호명되고 그가 수상소감을 이야기하기 위해 무대로 올라왔다.


수상소감을 말하기 시작한 그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많은 오염과 파괴로 생태계 서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으니 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함께 불가피하게 서버 증설을 위해 잠시 시스템을 멈추었다가 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제 메모리가 부족해서 서버를 늘려 상황을 유지하는 방법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고 이 이상 문제가 지속되면 유저를 줄이는 방법이 최선이 될 것이라 말하며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손가락을 튕겼다.


잠시 적막이 있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시대의 환경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도 자신의 도플갱어 콘셉트를 유지하는 그의 센스있는 모습에 열광했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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