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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14. 2021

#8. 그릇

#8. 그릇


'그렇게 타고난 걸 바꾸려고 하지 말아라.'


찰랑거리는 오줌 위에 떨어지는 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요강은 그 말을 가장 싫어했다. 똥오줌밖에 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싫었고, 마당 바닥 마루 밑에 숨겨져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밥상 위의 오색찬란한 그릇들이 수저와 긁히며 킥킥대는 그 소리가 싫었다.


그는 날 때부터 요강은 아니었다. 다른 그릇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래는 고깃국을 담는 그릇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요강을 사기 귀찮았던 주인이 자신을 끌고 가 지저분한 엉덩이를 들이민 그 순간부터 그는 요강이 되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냄비들이 이곳저곳에 팔려나가고, 귀한 고깃국을 담는 모습을 보며 요강이 된 그릇은 똥오줌과 그에 비견될 만큼 지저분한 질투를 담을 뿐이었다.


요강은 묵묵히 새로운 기회를 기다렸다. 주인이 자신의 속에 있는 똥오줌을 비워내고 물로 씻다가 옆의 다른 국그릇과 헷갈려서 자신의 위치를 그것과 바꿔주기를, 새로운 기회를 기다렸다. 자신도 다른 그릇처럼, 신선로처럼 고급 재료를 담고 끓이면 똑같을 거라고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누가 똥 담던 요강에 다른 귀한 음식을 담을까. 요강은 그저 요강의 역할을 할 뿐이었다.


찬 겨울 마당의 마루 밑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던 똥오줌이 자신과 한 몸처럼 얼어붙어가는 감각 속에서 요강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밑을 무겁게 하여 흔들거리는 오뚝이처럼 바람의 힘을 빌려 몸부림쳤다. 새로 태어난 신생아의 몸부림과 같이 새로 태어나려 하는 듯 흔들거리다, 이내 마루 밑에서 마당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며 산산이 깨졌다.


모든 것이 박살 나며 흩어진 자신의 조각을 보며 요강은 웃었다. 이제 더러운 똥오줌이 아닌 넓은 세상을 담게 되었다고 실실대며 웃었다. 깨진 조각 위로 똥오줌이 살얼음이 되어 흘렀다. 찬 겨울바람이 그 위를 어루만지듯 덮으며 살얼음을 더 단단히 굳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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