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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Feb 28. 2024

하프타임랩소디 #3-바이올리니스트의 남편으로 살아남기-

생존과 공존의 그 어디 중간에서 살아가는 남편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 배경음악이 귀에 익숙한데 제목이나 작곡가가 안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가 그중 하나다. 알려진 대로 이 곡은 니체의 동명 철학소설을 교향시로 만든 곡으로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 <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문제적 장면, 일명 “유인원 뼈다귀” 장면에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엄청난 반향과 유명세를 이끌었다. 도입부에서 연주되는 트럼펫, 팀파니 소리만 들어도 대부분 사람들이 “아”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곡으로 웅장함과 더불어, 극적인 긴장감, 몰입, 해소 등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명곡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이 곡을 잊을 수 없게 된, 아니 웬만큼 외울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아내가 속한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이 곡을 연주한 것이다. 아내는 40여 년 가까이 바이올린을 해왔고 국내 모 교향악단에 소속된 전문 연주자다. 


친한 사람들이 바이올리니스트(이하 연주자로 쓰려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타이핑이 어렵다.) 아내와 살면 귀가 호강하니 좋겠다 하는 소리를 한다. 물론 나는 막귀를 겨우 벗어난 아직은 클래식을 배우면서 듣는 수준이긴 하지만 아내의 연주를 1:1로 들을 수 있는 건 분명 호강이다. 그런데 연주자와 함께 한 집에서 긴 세월을 같이 산 내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호강”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다. 그 사례가 바로 “자라투스트라”고 “살아남기” 사례로서 말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것과 달리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와 연주할 곡을 여러 차례에 걸쳐 연습하지는 않는다. 협연자가 있을 경우를 포함해 몇 번 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전문 연주자가 아니고 클래식 전문가가 아니기에 잘못된 설명이 있을 수 있어 미리 이해를 구한다. 내 사례는 오로지 연주자 남편의 사례다. 다 같이 모여 협주를 하고 그 외의 시간에 연습실이나 집에서 정말 많은 시간 연습을 한다. 아내는 집에서 연습을 한다. 그리고 타 오케스트라의 연주 앨범을 정말 많이 듣는다. 익숙해진 살아남기”의 시간이 시작된다


바이올린이 음량이 작은 악기라 할 수 있지만 집, 특히 아파트라는 공간에서는 다르다. 방문을 닫고 연습을 해도 그 모든 소리가 마치 몇 미터 앞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생생히 들린다. 문제는 연습이기에 연주가 쉽지 않거나 손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구간을 수도 없이 반복한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이건 전문가 혹은 그 일을 통해 밥벌이를 하려면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걸 알고 이십여 년을 옆에서 들어왔지만 한 공간에서 그 시간을 같이 하기는 쉽지 않다. 한 구간을 연습하고 또 하고 그리고 듣고 또 듣고. 

더불어 옆집, 윗집, 아랫집도 신경 쓰인다. 가끔 창문을 열고 연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9층에서 연습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지상에서 생생히 들린다. 아내 몸 컨디션이 좋은 경우, 늦은 저녁 이전까지 몇 시간을 쉬지 않고 연습한다. 해가 지면 내 귀는 거의 지칠 대로 지쳐 있고 신경은 점점 더 곤두선다. 하지만 어찌 내색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한 마디. “수고했어.” 그게 끝이다. 이번에 나는 “자라투스트라”를 3,4일 동안 수 십 번을 들어야 했다.   


“익숙해진 살아남기”, 두 번 째는 집안 서열이다. 가진 재산이 아파트 한 채가 전부인데 이걸 제외하고 우리 집에서 제일 값어치 나가는 자산은 1위가 아내, 2위가 바이올린, 3위가 간신히 나다. 바이올린은 상당히 민감한 악기라서 공기의 습도 변화나 온도의 변동 등 환경 요인에 따라 목과 줄의 팽창과 수축이 일어날 수 있다. 장마철이 되면 아내는 바이올린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여름철 야외 연주라도 하는 날에 세컨드 악기를 들고나간다. 나 때문에 에어컨을 트는 게 아니라 악기 관리를 위해 에어컨을 튼다. 자동차로 이동 시에도 차내 온도를 신경 쓰며 뒷자리에 고이 모신다. 돈도 많이 잡아먹는다. 여름철이 지나면 바이올린 뒤판을 열고 습기 제거를 하고 정기적으로 활털과 줄도 갈아줘야 한다. 모든 면에서 서열 2위가 맞다. 하지만 20여 년을 서열 1위와 2위를 모시고 살았건만 2위의 가격을 모른다. 물론 나보다는 비싸겠지. 


마지막 “익숙해진 살아남기”는 인간 “바디프렌드”가 되는 것이다. 바이올린은 목을 통해 많은 압력을 받으며 연주하는 악기다. 아내도 40년 업력에 맞게 목과 어깨, 손목, 척추 등에 직업병을 달고 산다. 연습이 끝나면 나는 수동 “바디프렌드”가 된다. 손부터 등까지 뭉친 근육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 더불어 비위도 맞추고 마음도 풀어줘야 한다. 민감한 악기는 민감한 사람을 만든다. 특히 큰 연주를 앞두고는 웬만해서는 모두 “Yes”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가정의 평화이고 대한민국 클래식 발전을 위해서도 그게 낫다. 

어떤 영역이건 아티스트는 존중받아야 하고 내 아내도 연주자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도 그녀를 존중한다. 그리고 그녀의 연주를 직관한다는 것은 분명 호강이다. 


자라투스트라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남아. 그게 행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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