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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r 04. 2024

하프타임랩소디#4 –
나이와 향수가 뭔 상관

어느 중년 남자의 지극히 이기적인 향수 이야기

“당신은 나이에 비해 너무 향에 민감해”. 아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인데 슬쩍 반감이 든다. 나이하고 향이 무슨 상관이며 민감한 게 잘못인가? 내 방으로 들어와 책상 위, 나만의 작은 화장대 그리고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10여 개 남짓의 향수, 디퓨저, 아로마 캔들, 인센스 스틱 등 좀 많기는 하다. 나는 정말 향에 민감한 걸까? 다른 남자들은 안 그런가? 


사람마다 오감 중에 유난히 발달하는 감각이 있는데 내게는 후각이다. 어릴 적부터 “개코”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물론 개코는 향보다는 “냄새” 쪽에 더 가깝다. 기억을 더듬어 언제부터 이렇게 향에 민감하고 관심을 가졌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사회생활 초기 프랑스 깐느로 출장 가서 머문 B&B에서 맡은 라벤더향, 정확히는 라벤더 포푸리향이었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향이지만 해외 출장 처음 가 본 촌놈에게는 이국의 향이었다. 깐느 하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게 라벤더향이다. 향수 강국 프랑스 면세점에서 비슷한 향을 찾았지만 못 찾고 면세점에서 인생 첫 향수로 샤넬의 “안테우스”를 맞이했고 한 남자의 향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30대 전후에는 지금처럼 국내 시장에 향수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패션하우스에서 별책부록처럼 만든 향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음의 한편에 있었던, 이세이 미야케, 캘빈 클라인, 입생로랑, 파코라반, 장 폴 고티에 등이 그런 향수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철이 들고 나이가 들면서 이런 향수들에 조금은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향들이 향수만 만드는 전문 회사가 아닌 패션하우스에서 만든 향으로 사무실, 지하철, 심지어 비행기 내에서 여기저기서 너무 자주 맡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조향사는 아니지만 적어도 다른 이들이 잘 안 쓰는, 나에게 맞는 향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전히 찾는 중이다. 


사실 향수는 그저 좋은 향을 발산하는 액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향수는 단순히 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경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철학적, 미학적 논리는 아니지만 향기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특정한 감정을 자극하며 기억 속 챕터를 소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라벤더향은 30여 년의 시간을 초월해 그 시절 깐느 골목과 함께 했던 사람들까지도 기억하게 만든다. 


또한 향수하면 항상 같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자기표현 그리고 정체성이다. 소수의 부유층에서는 자기만의 유일무이한 향수를 갖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그런 차원일 것이다. 특정한 향수를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취향이나 성격을 나타내고자 하니 향수는 자아를 드러내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이다. 


나에게 잘 맞는 좋은 향수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자연친화”다. 자주 찾게 되고 가까이하고 싶은 향수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자연에서 유래된 원료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향수는 자연과의 연결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자연의 향기를 통해 우리는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느끼고 싶어 하고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한다. 


남과는 다른 독특한 향을 내며 다양하고 까다로운 조건들에 맞는 향수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줄 정도의 향수라면 더욱 그렇다. 긴 향수 여정이 한 시점에서 이런 조건들을 상당 부분 만족시켜 주는 향수들을 몇 개 만났다. 2010년대 초반으로 기억된다. 니치향수라는 말이 온라인 특히, SNS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며 새로운 향의 소개와 더불어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제공 : 신세계인터내셔널

일단 전문 조향사, 전문 브랜드, 고가라는 말로 요약되는 니치 시장이 단어 뜻과는 상반되게 향수 시장의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Creed, Joe Malone, Diptyque, Annick Goutal, Byredo, Penhaligons, Aqua di Parma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시되며 취향 저격을 제대로 해냈다. 이 중 몇 개는 국내 출시 전, 이베이를 통해 구매한 적도 있고 대부분 브랜드가 지금도 백화점 매대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은 시장이 더 커져 여기에 Kurkdjian, Le Labo, Kilian, Frederic Malle, Heeley 등이-물론 이 외에도 엄청 많지만- 가세해 향수 애호가의 지갑을 노리고 있다.  


향에 민감한 아재도 이 가운데 몇 개를 갖고 있고 쓰고 있다. 물론 여전히 직구로만 구매 가능한 향수도 선택해 쓰고 있다. Comme des garcons이 잡지 Monocle과 협업해 출시한 연작 시리즈 향수, Hinoki, Laurel, yoyogi 중, Laurel을 베를린 미테 지구 편집매장에서 발견하고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다. 가장 만족하는 향수다. 나에게는 적어도 독특함과 여유, 자신감, 희망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아침마다 베를린을 생각나게 한다. 향수가 줄 수 있는 가치를 모두 주는 향수다. 요즘은 향수를 레이어 해서 쓰는데 Commed des Garcons의 wonderwood다. 뿌릴 때마다 용기 디자인에 감동하고 향에 취하는 베프 중 하나다.    

나는 향수를 왜 쓸까? 나 좋으라고 쓴다. 누가 알아주기를 원치 않고 그저 발산하는 향에 기분 나빠하지만 않으면 만족한다. 향수는 정말 내 취향이고 내 기분을 위해 쓰는 것이다. 나이에 맞으면서도 도드라지게. 지극히 이기적인 선택이다. 


봄을 맞아 여유가 된다면 DS Durga의 “Cowboy Grass”를 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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