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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r 11. 2024

엄마 미안해, 엄마 동태탕을 이겼다.

동태탕 한 그릇이 별 거다. <광주식당> 

'집밥'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참 많이 들려온다. 한식을 주종목으로 하는 식당이나 노포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맛을 평가하면 대부분 집밥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그런 집들은 대부분 맛집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거기 오는 분들은 집에서 항상 그렇게 맛있는 밥을 먹었단 말인가? 


집밥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고 팬데믹을 겪으며 전면으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가족 구성원-‘식구(食口)-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횟수가 줄어듦과 더불어 외식 산업이 발전하면서 밖에서의 식사가 일반화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집밥’은 이런 단순한 물리적 요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 의미는 바로 “엄마”다. 알게 모르게 우리가 집밥이라고 말하며 그 안에 담고자 하는 것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 배달문화가 자리 잡으며 함께 언급되는 단어가 집밥인 것을 보면 유추가 된다.  

아내와 몇 년 전부터 집밥 같은 밥, 백반을 잘하는 집을 시간 날 때마다 찾아다닌다. 이번에 다녀온 집은 말 그대로 “노포”, “집밥”, “엄마의 손맛” 그리고 “가성비/가심비”를 모두 만족시켜 준 집이다. 식당이 위치한 지역은 동묘 근처다. 구제, 노포, 어르신들, 맛집 등의 단어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바로 그 동묘시장 안에 위치한 <광주식당>이다. 메뉴는 한 가지, 동태탕. 예전에 허영만 화백이 들러 극찬을 한 맛집이라 어느 정도 웨이팅은 예상하고 갔는데 역시나 좁은 시장 골목 안에 긴 줄이 있어 묻지 않아도 식당이 어딘지 알 수 있었고 코를 자극하는 동태탕 냄새로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냄새 만으로 허기가 몰려왔다. 같이 줄 선 식객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아 좀 빨리 먹고 좀 일어나지”하는. 30여 분 지나 허름한 식당 내부-5-6개의 익숙한 파란 플라스틱 테이블에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있는-로 들어가 앉자마자 오감을 자극하는 동태탕 두 그릇이 콩나물, 무 생채 반찬과 함께 양은 쟁반에 놓여 떡하니, 전광석화 같이 나왔다. 

 

국물 한 수저 떠 입에 넣은 순간 나도 모르게 방언처럼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엄마 미안해. 엄마 동태탕을 이겼네.” 대한민국 자식들은 이해할 거다. 맛집 맛의 기준 중 하나는 엄마맛이다. 일단 이걸 넘어서면 그 집은 맛집 기준을 통과한 것이다. 그다음에 양이다. 푸짐한 동태에 맛일 잘 베인 무, 적당히 단단한 두부, 혼자 먹을 양이라기는 좀 많다. 근데 맛있다. 단출한 두 가지 반찬 맛도 이미 엄마를 잊게 했다.

정신 차리고 아내와 몇 마디 나눈다. “어때?” 아내 왈, “국물이 역대급이고 동태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살이 탱탱하네.  비린내도 없어.” 입 짧은 아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근데 오빠 이게 8천 원이야.”. 그제야 고개 들어 메뉴판을 봤다. 메뉴는 한 가지 동태탕, 가격은 8천 원 끝. 동태탕 삼매경에 빠져 식사하는 중에 사장님이 한 마디 건넨다. “따뜻한 국물 더 드릴까요?” 국물 맛이 더 좋아진다.  

집밥, 맛집, 노포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맛, 가격, 양, 위생, 친절함 등 등. 내 기준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텐데 오늘 맛본 동태탕은 어는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찐 맛집, 찐 집밥이었다. 


사실 집밥은, 맛을 논하기 전에 엄마의 사랑과 정성, 그 안에 녹여진 추억과 향수, 편안함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모가 손맛은 살아 있지만 밥 해 달라고 하기엔 그녀도 너무 나이가 드셨다. 차라리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 엄마를 이긴 동태탕 맛집 찾았는데 한 뚝배기 하러 가실까요?”라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그리움이 슬며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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