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아카데미상 시즌이 되면 예전의 수상작을 볼 기회가 있다. 올해는 스스로 한 편을 골라 ‘다시 보기’를 했다. 2021년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노매드랜드>. 그 당시 극장에서 보고 난 후, 기분 나쁘지 않은 묵직함을 주었던 기억도 있고 영화 전편을 안아주던 피아노 연주를 다시 듣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영화 내내 생각의 끈을 놓게 하지 않는 “수평감”을 다시 보고 싶었다.
영화는 미국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가시적 불평등을 겪는 주인공을 포함한 현대 유목민들, ‘노매드’들의 삶을 그려내지만 급진적 이해를 강요하지도, 많은 말을 하지도 않는다. 물론, 개인적 해석으로는 주인공 “펀”이 경제적 붕괴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잃고, 노매드의 삶을 선택해야 함이 중산층에서의 전락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노매드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노매드의 삶을 선택하게 된 자체가 현대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하위 계급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음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평등’, ‘계급’에 앞서 영화 전편에서 보이는 ‘수평’에 더 마음이 끌렸다. 영화 전편에 걸쳐 수평은 미장센이나 배경을 넘어 감독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영화 속 주인공인 펀(프랜시스 맥도 랜드)은 ‘뱅가드’라는 밴을 타고 ‘노매드’를 하는데 이는 계속적인 이동을 말하고 이런 이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적인 장면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수평적 장면은 주인공의 여정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며, 관객들에게 자유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자연의 수평 못지않게 인물 간 수평도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 속에서는 다양한 배경과 연령대의 노매드들이 등장하는데 미국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적 장면이 사용됐다고 생각한다. 수평적 구도는 인물들 간의 평등성을 나타내며, 관객들과도 마음과 눈의 수평으로 공감을 지긋이 유도한다.
아이러닉 하지만 수평은 안정성과 불안정성, 양면을 모두 포함할 수 있다. 수평 구도는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예측 어려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과 이로 인한 불안정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내게는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경제적 붕괴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잃어버린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불안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평적인 장면이 사용된다. 터미네이터의 마지막 장면, 수평선 속으로 사라지는 바이크의 뒷모습처럼 다시 혼자 수평 너머로 떠난다.
수평과 함께 다시 보기를 한 이유는 영화음악 때문이다. 감독이 추구하는 지나친 연민도 배제하며 동시에 지나친 낭만도 배제하는 데 있어서 피아노가 주도한 영화음악은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는 가장 적격의 영화음악가였다. 그의 피아노 잔잔하고 때론 명상의 분위기를 유도하고 아주 간결하다. 명징한 얼음 조각을 바라보는 느낌이지만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는, 그만의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수용의 정도가 높다. 국내 TV, 자동차 광고에 그의 음악이 사용된 게 이를 증명해 준다.
노매드랜드의 주제는 일면 심오하고 누군가에겐 힘듦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에이나우디의 피아노가 조용히 보듬어 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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